"당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창''(이회창)이 대선 직후 미국에 계실때 유일하게 그림자 수행을 하면서 모시더라구요. ''창''주변에 그많던 사람들이 몰려다니더니 그때는 정말 썰물처럼 다 사라졌을 때였거든요."
2002년 대선 당시를 기억하는 한나라당 관계자들 중에 ''창''측근으로 현재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관계자들은 지상욱 씨를 ''창에게 고마운 사람'' 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정식 정치권에 몸을 담은 사람은 아니고 부친과 한나라당의 인연으로 개인적으로 이회창 전 총재를 도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당시 이회창 캠프에서 공식적으로 대선 캠페인을 벌였던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이회창 캠프에서 최측근 수행팀에 끝까지 남아 있었던 사람들만이 지상욱씨를 잘 알고 있고 결혼한다는 사실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지상욱씨 이회창 전총재에게 결혼 사실 알리고 축하받아
지상욱 씨는 수일전 양가부모 상견례 직후 이회창 전 총재를 찾아가 결혼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이 전총재는 "축하합니다"는 화답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창 전 총재는 심은하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이 총재는 결혼식인 10월 18일 별다른 스케줄이 없으면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전했다고도 했다.
이회창 총재의 전 공식 보좌진중 한 명은 "이 전 한나라당 총재가 200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후 2003년 초 미국 스탠포드 대학 후버 연구소에서 1년간 명예 연구교수로 도미했을 때 이미 스탠포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던 지상욱씨가 일부러 미국까지 따라들어가 1년여간을 측근 보좌했다"고 전했다. 이회창 총재는 당시 67세로 부인도 없이 홀로 미국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큰 어려움이었다. 이때 지상욱 씨가 스탠포드 근처 아파트에서 기거하면서 통장개설, 전기시설 설치 등 기본적인 생활 문제부터 학교 시설 안내까지 도맡아 1년여간을 마치 친자식처럼 도왔다고 한다.
당시 이회창 전 총재는 미국생활 도중 상을 당해 국내에 잠시 귀국했을 때 미국생활 당시 홀로 햄버거로 점심을 때울 정도로 적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한때 최고의 실력자에서 급락한 권력자의 모습에 정치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되기도했다.
한편 창의 또다른 측근은 "이미 어느정도 결혼 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서 "본인은 조용히 양가 부모, 친지 100 여명만 모시고 교회에서 조용하게 치르려고 했는데 한 주간지에서 동향이 보도되고 난후 여성지에서 아예 집앞에 진을 치고 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고 하더라"면서 "20일이 여성 월간지 마감이었는데 이 때문에 더이상 미룰 수 없어 결국 공식적으로 밝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들었다"면서 당사자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보도이후 서로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
이 관계자는 또 "언론의 집요한 취재때문에 모 주간지 사진 기사 보도이후 본격적인 혼수준비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둘이 따로 만나지도 못해 전화로만 통화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종교적 신실함이 충만한 선한 사람이다. 둘다 평범한 결혼과 가정생활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주위에서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도움이 안될 것" 이라고 덧붙였다.
노컷뉴스 남궁성우 기자 socio94@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