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보상'' 길 열리나(종합)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피해보상 협상키로…日기업으론 처음

미쓰비시중공업이 일본 기업 가운데 최초로 일제 시대 강제노역에 동원한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에 대해 협상하기로 했다.

일본 기업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국 피해자들과 협상에 나서기로 한 건 이번이 해방 이후 처음있는 일이어서, 강제 합병 100주년을 맞은 한일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 모임''은 15일 오전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쓰비시중공업측이 전날 공문을 보낸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 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에 전달된 공문에는 "근로정신대 문제에 대한 협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이 회사의 공식 입장이 포함됐다.

미쓰비시중공업측은 이미 내부 논의를 거쳐 강제노역에 대한 일정 수준의 사죄와 피해 보상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부터 구체적 보상 범위나 사죄 수준을 놓고 본격 협상이 시작될 전망이다.

시민 모임의 이국언 사무국장은 "일단 재적 기간과 66년간의 물가 가치에 따른 미불임금 산정이 주요 협상 내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그간 강제 노역자들을 방치한 도의적 책임과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 문제도 함께 논의될 것"이라며 "8.15 이전에 협상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일제 강점기인 1994년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나고야로 끌려가 군용 항공기 공장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는 대략 3백여 명.

이들 가운데 양금덕(83) 할머니 등 8명은 지난 1999년부터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였다.

10년에 걸친 소송은 지난 2008년 ''기각''으로 최종 마무리됐지만, 일본 법원은 강제 노역에 대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측 책임을 인정하고 ''별도 입법''과 ''자발적 해결''을 권고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지난해말 일본 후생노동성이 이들 할머니의 ''후생연금'' 가입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탈퇴수당'' 명목으로 99엔(한화 약 1200원)씩을 지급, 지각있는 한일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미쓰비시측의 전향적 입장 변화를 불러온 데에는 양국 일반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나고야 시민들은 지난 2007년부터 도쿄까지 700km를 오가며 3년 동안 ''금요 시위''를 벌여왔고, 광주전시장 앞에서도 지난해 10월부터 200여일 가까이 시민들의 1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엔 한국 시민들이 도쿄 본사를 방문, 국회의원 100명 등 13만 4000여명의 서명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CBS와의 전화 통화에서 "소식을 듣고 혼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잠도 한숨 못 잤다"며 "내 마음속 해방은 66년만인 오늘에야 맞이하게 됐다"고 감격했다.

양 할머니는 "모든 게 시민 여러분들 덕택"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협상도 야무지게 잘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당시 항의 방문에 동행했던 민주당 이용섭 의원도 "미쓰비시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의미있는 결정"이라며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바로 채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국언 사무국장은 "미쓰비시는 10만명을 강제 노역시켰던 1등 전범 기업"이라며 "다른 기업들은 물론,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에도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미쯔비시측의 협상 수용을 계기로 강제 합병 100주년을 맞은 한일 양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떤 후속 입장을 내놓을 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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