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스포츠에선 왜 이변이 자주 나오는 걸까

[심리학 열풍과 역풍③]리더십,응집력 등 승패에 영향미치는 주변요인 많아

심리학 열풍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심리학과 타 분야의 결합은 상담, 연애, 소비자, 범죄, 색채 등 익숙한 카테고리에 그치지 않고 점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심리학도 융합이 대세다. 심리학 적용이 눈에 띄는 새 분야를 살펴보고, 심리학 역풍도 함께 진단해본다.<편집자 주>

팀스포츠의 매력은 개인종목보다 의외의 결과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개인기량이 뒤져도 예상밖 승리를 거두는 빈도가 개인종목보다 높다. 본인이 가진 실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개인종목과 달리 팀스포츠는 팀 구성원의 역할분담, 감독의 용병술, 응집력 등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요인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팀스포츠의 묘미이기도 하다. 왜 팀스포츠에선 ''이변''이 자주 발생하는지 심리학적인 면에서 살펴봤다.

◈ 축구 16강 진출- 팀목표 안에 개인목표 녹아들어

한국 축구대표팀은 최근 막을 내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원정 첫 16강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28명의 태극전사 모두 잘 싸웠지만 ''캡틴'' 박지성의 존재는 단연 빛났다.

박지성은 항상 팀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개인적인 영광은 그 다음이다. 2-0으로 승리한 그리스전을 하루 앞두고 가진 공식인터뷰에서 그는 ''개인적인 목표''를 묻자 "16강 진출 외에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후반 7분, 골을 넣어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3개 대회 연속골의 주인공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되어서 기쁘다"며 자신을 낮췄다. 버거운 상대인 아르헨티나 전을 앞두곤 협력수비를 강조했다. "메시는 못막아도 아르헨티나는 막을 수 있다"며 자칫 주눅들 수 있는 선수들을 독려한 것.

박지성은 늘 팀을 먼저 생각한다. 최근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 ''나를 버리다''에서도 그는 팀에 헌신하는 플레이와 희생을 강조한다. 그는 "스스로 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감을 확인할 때 골보다 더 큰 자양분을 얻는다". "헌신은 배려의 다른 이름이다. 승리는 팀원들 중 누가 일관되게 헌신하고 끝까지 배려하는 가에 달려있다고 믿는다"고 이 책에서 서술했다.

감독,동료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박지성의 이런 태도는 팀을 똘똘 뭉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매사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을 주는 그의 모습은 팀원들이 스스로 열심히 하게끔 동기를 부여해 준다. ''캡틴'' 박지성의 힘은 ''헌신''에서 비롯된다.

반면 1무2패라는 최악의 성적표로 조별리그 탈락 수모를 맛본 프랑스는 내분으로 무너졌다. 멕시코 전 때 공격수 니콜라 아넬카가 라커룸에서 레몽 도메네크 감독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가 쫓겨난 게 발단이 됐다. 선수들은 이에 반발해 집단 훈련거부로 맞섰고 사분오열 끝에 프랑스 대표팀은 침몰했다. 팀내 불협화음이 외부에 노출돼 ''아트사커''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다.

국민들의 비난여론이 들끓자 프랑스 정부는 도메네크 감독과 쟝 피에르 에스칼레트 프랑스축구협회장을 국회 청문회에 출석시키는 촌극을 연출했다. 그러나 도메네크 감독은 "대표팀의 분열과 참패는 본인 책임이 아니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한국의 16강 진출과 프랑스의 탈락은 팀스포츠에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깨닫게 한다.

''조수경스포츠심리연구소''의 조수경 박사는 "아무리 개인기량이 뛰어나도 지도자의 리더십, 구성원의 역할분담이 효과적이지 못하면 최고수행을 발휘할 수 없다. 프랑스의 안좋은 팀 분위기가 응집력를 소모시켰다"고 했다.


이어 "팀이 요동치는 건, 개인이 욕심부리거나 팀원간 충돌이 일어나 분위기가 안좋아 지기 때문이다. 팀스포츠에선 박지성처럼 ''우승''이라는 팀목표 안에 개인목표가 따라가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여자배드민턴 단체전 우승-''공동목표''의 막강한 힘

지난 5월 한국 여자배드민턴은 1956년 대회 창설 후 처음 세계단체전(우버컵) 정상에 올랐다. 중국의 대회 7연패를 저지한 값진 우승이었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상 중국에 떨어졌다. 선수 개인별 세계랭킹은 한참 뒤졌고, 상대전적도 열세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만리장성을 허물었을까.

올 1월부터 여자단식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는 김지현 코치는 "많은 훈련량, 꼼꼼한 전력분석, ''밑져야 본전''이라는 무심타법 덕분이라"고 비결을 전했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공동의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본다.

배드민턴은 대인종목이지만 단체전만큼은 팀 대항으로 치른다. 같은 나라 선수라도 단,복식에선 서로 경쟁상대로 만나니까 라이벌 의식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단체전에서는 ''우승''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하기 때문에 ''이변''이 곧잘 나온다. 개인기량 못잖게 조직력이 중요한 탓이다.

조수경 박사는 "공동의 목표 설정은 개인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다. 팀원들끼리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인지하고, 구체화시킬 때 동기부여가 가장 잘되기 때문이다. 팀스포츠에선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기대이자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단체전 우승은 단,복식에서 특정선수가 우승했을 때보다 팀 전체에 주는 효과가 더욱 광범위하다. 세계랭킹 1위 왕이한을 꺾고 제1단식을 따냈던 배승희는 우버컵 우승 후 "자신감이 많이 붙고 팀워크도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동료들과 함께 우승을 일구는 과정에서 함께 땀을 쏟고 눈물 흘리다 보면 성취감이 배가되고 팀 분위기도 덩달아 ''업''될 수밖에 없다. 코트에서 싹튼 동료애는 경기장 밖 우정으로 연결되고, 이는 팀의 응집력을 높여준다.

조수경 박사는 "개인 또는 대인종목 단체전에서 우승하면 팀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에 대한 욕구가 있다. 단체전은 선수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면 충족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 육상 400m 계주- 자기 동일시 효과 믿는다

육상같은 개인종목의 단체전도 예외는 아니다. "계주멤버 구성은 9월에 완료되지만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400m 계주에서 한국신기록 경신과 메달권 진입을 기대해볼 만합니다." 대한육상연맹 장재근 트랙 기술위원장은 최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00m 계주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난 6월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김국영이 10초23으로 31년 만에 남자 100m 한국기록을 깼지만 계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남자 400m 계주 한국기록은 22년째 답보상태다. 최근 2년간 가장 좋은 기록은 39초86. 한국기록 39초43(88년 서울올림픽)과는 0.43초 차이나고, 아시아기록 38초03(2007년 오사카세계선수권)에는 1.83초 뒤진다. 세계기록 37초10과의 격차는 2.76초.

그렇다면 장재근 위원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일단 선수들이 100m에서 마의 10초34벽을 허물어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났다는데 있다. 김국영 뿐 아니라 임희남, 여호수아도 지난 6월 대회에서 각각 10초32, 10초33을 기록했다. 선수들은 그동안 "한국신기록을 깨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었는데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진 만큼 기록 단축에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다.

장재근 위원장은 "계주 예상 멤버들의 개인기록이 상승세에 있고, 선수단 분위기도 업되어 있어서 계주에도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개인기록이 좋아졌다고 계주 기록도 꼭 그만큼 좋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계주는 4명의 주자가 호흡을 맞추는 팀경기인 까닭이다. 개인주력 외에도 바통터치, 주자배치가 기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선수들은 ''400m 계주는 바통터치만 잘 되면 기록을 1초는 줄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실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미국 남녀 계주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바통터치 실수로 나란히 탈락했다. 반면 일본 남자 계주팀은 특출난 선수는 없지만 물 흐르듯 이뤄진 바통터치 덕분에 38초15로 ''동메달 드라마''를 연출했다.

바꿔말하면 계주는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낼 주변요소가 많다는 얘기다. 육상대회는 일정상 개인종목을 먼저, 계주를 나중에 치러서 계주기록이 개인종목에 반영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김국영이 31년 만에 한국기록을 경신한 덕분에 단거리 주자들 모두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조수경 박사는 이를 일종의 ''자기 동일시 효과''라고 설명한다. 조 박사는 "우리팀 중 일원이 우승하거나 기록을 깨면 동일시 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발휘하게 만들어서 수행(경기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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