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전쟁영화의 새場


한국 영화의 질풍노도. 5일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는 결코 1000만 관객 시대가 부풀려지거나 우리 영화를 위한 희망을 담아 덕담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실감나게 한다.

''''태극기…''''는 한국판 블록 버스터가 분명한데 할리우드 전쟁 영화 류로 구분해선 안될 것 같은 뭔가가 있다. 피아와 주적이 분명한 전쟁,영웅을 위한 할리우드의 전쟁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3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첫 시사회에서 영화전문가와 배급사 관계자들은 ''''실미도''''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더욱 스케일과 디테일이 향상된 ''''태극기…''''에 놀라 박수칠 타이밍을 놓쳤다.

이러한 찬사는 국내 영화제작 사상 최고액인 150억원(''''실미도'''' 100억원)이란 물량 투입에 따른 스펙타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함을 부인할 수 없으나 그 돈으로 감동까지 사지는 못한다. 한 눈을 팔 수 없게 하는 전쟁신은 때로는 하이에나의 먹이사냥 장면처럼 집요하고 또 때로는 독수리의 수직하강처럼 강렬하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투신의 사실적 묘사가 관객의 얼굴에 피가 튀는듯 한 것처럼 ''''태극기…''''도 그러하다. 아니 내 형제의 피가 튀는 것 같으니 관객의 눈에 핏발이 서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만큼 이 작품은 정서의 공유로 인해 리얼리티가 살아난다. 인민군의 인해전술,평양 상공을 뒤덮은 전투비행 신 등은 한국 영화에서 한 번도 못 본 장면이다.

이러한 리얼리티는 대구역의 징집열차,황해도 장단역의 피난 열차 같은,재현이 녹록치 않았을 50년대 증기기관차와 인민군 지프,경장갑차,야포,GM3트럭은 물론 녹슨 만년필 하나,헤진 손수건 한장에서도 드러난다. 대개의 영화나 TV드라마에서 피난민의 행색을 표현했을 때 그들은 결혼식에라도 참석하는 사람마냥 의복이 깔끔하나 이 작품에선 적어도 그런 느낌이 없다. 칼라로 보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강제규 감독이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는 ''''6·25''''의 순차적 전개를 그대로 담았다. 서울함락 낙동강방어선 서울수복 평양대공습 압록강퇴각 3.8선전투…이 지각변동의 사실(史實)에 함몰되는 한 가족의 운명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월 서울. 아버지 없이 청각장애인 어머니와 고등학생인 동생 진석을 돌보는 가장인 진태(장동건)는 똑똑한 진석(원빈)에게 모든 희망을 걸고 구두닦이로 생계를 꾸려간다. 어머니와 그의 약혼녀 영신(이은주)은 시장에서 국수를 말아 팔며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특히 은주는 조실 부모하고 어린 세동생을 돌보는 강인한 여자. 그러나 전쟁으로 모든 것은 허사가 된다.

징집된 진석을 구해내기 위해 자원 입대한 진태는 동생과 한 부대에 소속된다. 그리고 낙동강 전투에서 목숨을 건 활약으로 점점 강인한 군인이 되어가나 한 편으로 동생을 지키기 위해 필요 이상의 살인을 저질러 형제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 형제의 갈등은 곧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남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약혼녀는 부역자로 몰려 사살되고 동생마저 희생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무공훈장을 버리고 인민군이 된다.

주연 장동건과 원빈은 전장이라는 상황에서 감정 연기가 쉽지 않음에도 진한 형제애를 연극 객석 맨 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달한다. 장동건은 자신에게 늘 따라 붙는 ''''꽃미남''''의 프리미엄을 반납하고 빛나는 연기력으로 승부했다.

전쟁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들어 극단으로 치닫거나 아나키스트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극장가에서 오랜만에 보는 ''''6·25''''는 우리들 머리에 박혀 있는 사상의 극단과 감정의 편린을 뒤엎었다. 일본은 오는 6월 상영 예정이고 미국과 유럽 영화 시장도 제작사에 선을 대기 바쁘다. 한국영화사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어떻게 평가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전정희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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