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공군이 촬영한 유럽대륙 및 독일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 550만장이 공개됐다.
6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영국 킬리대학에 있는 영국 국가문서보관소가 보관 중이던 전쟁 당시 영국공군 정찰기가 독일과 기타 다른 나라상공에서 찍은 첩보사진이 공개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진공개를 추진한 킬리대학의 앨런 윌리엄스교수는 "사진 자료가운데는 지난 1943년과 1944년 폴란드에 있는 유태인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상공에서 찍은 것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 사진에는 시체소각로에서 나오는 연기와 유태인들이 점호를 받기 위해 수용소 앞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장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윌리암스는 "지금까지 영국 측은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킨 1944년 말과 1945년 미군과 영국군이 베르젠, 다하우같은 독일 내에 있던 수용소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유태인학살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전쟁초기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론 영국이 이런 비극적인 학살사례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견은 지금까지 수없이 제기됐다. 특히, 폴란드 망명정부의 외교관인 얀 카르스키는 "지난 1939년 영국과 미국 측에 유태인학살과 게토에 대한 정보를 넘겨줬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사진공개를 통해 카르스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경우 미국과 영국은 유태인학살을 알면서도 무시한 도덕적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스는 그러나 "사진 가운데는 영국공군에게 무참하게 폭격받아 파괴된 독일 서부 대도시인 쾰른 시가지의 모습도 있다"며 "이번 사진 공개는 독일의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윌리엄스는 또 "이번 사진공개에 대해 독일에서보다 영국 내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며 "아직도 많은 영국인들은 독일공군이 런던을 폭격한 것만 기억하지 영국공군이 독일 주요도시를 초토화한 것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 항공 사진 (출처=영국문서보관소) |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 총사령관 아서 해리스경은 군사목표만을 폭격하는 작전을 수행했지만 독일군 요격기로 인한 공군기 피해가 커지자 일명 ''무차별 폭격''이란 전술개념을 도입했다. 즉, 군사목표가 아니라도 민간인지역까지 공격하는 이 전술 때문에 엄청난 민간인 인명피해가 있었다.
동부독일 드레스덴의 경우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영국과 미국의 공군기들은 드레스덴을 그야말로 초토화했다. 특히 13,14일 이틀간 영국공군의 랭카스터 폭격기 7백70대와 미공군의 B-17 폭격기 3백30대 등 1천1백대의 폭격기가 3천1백톤의 폭탄을 쏟아 부어 드레스덴을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불바다로 만들었다. 독일이 영국의 코벤트리를 폭격한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민간인 피해가 컸던 이유가운데 하나는 당시 독일령(현 폴란드령)슐레지엔지역에서 소련군의 보복행위를 두려워한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드레스덴에 머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약 30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이 외에 사진 가운데는 지난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사살된 미군들의 시신으로 가득한 바닷가 정경과 독일이 자랑하던 신형전함 비스마르크호가 노르웨이 해안에 숨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는 장면도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이번 사진공개가 영국사회에 주는 영향은 1990년대 말 독일 전역을 돌며 순회전시된 ''Wehrmachtausstellung(전쟁 당시 SS나 기타 인종말살부대가 아닌 독일국방군이 저지른 전쟁기록 전시회)''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 독일에서는 "국방군은 자원자가 아닌 징집병이었고 유태인학살같은 반인륜범죄와는 무관하다"며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이번 영국측의 사진에 대해 영국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윌리엄스도 "사진 공개 후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보내왔고 유태인학살 피해자 뿐 아니라 이제까지 유태인학살이란 사건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많은 호응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이 사진 외에 아직 영국문서보관소에는 공개되지 않은 사진도 남아있다. 특히, 독일공군이 소련과의 전쟁을 수행하며 찍은 소련영토에 대한 기록사진은 아직도 러시아측이 자국 내 군사시설 및 지형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해 일반에게 열람되지 않고 있다.
윌리엄스는 현재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에 한해 사진을 판매하고 있다. 500만장이 넘는 사진 가운데 인력으로 하나씩 원하는 사진을 골라내는 것이 어렵고 자료의 양이 방대해 한꺼번에 인터넷에 올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는 "앞으로 사진판매대금을 모아 웹사이트를 개설, 전쟁의 비참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며 "앞으로 소련측 자료까지 공개된다면 2차 세계대전 가운데 가장 치열했던 독소전의 진면목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BS노컷뉴스 이서규기자 wangsobang@cb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