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도용 범죄…치외법권지대(?)

단순 주민번호 도용 처벌 시행 2년 넘었지만 여전히 도용 만연화…경찰인력 투입도 한계

단순 주민번호도용도 처벌을 받도록 한 개인정보 보호법안이 시행 2년을 훌쩍 넘었는데도 주민번호 도용 범죄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주민번호 도용이 만성화돼 있고, 일선 경찰에서는 다른 사이버 범죄 사건이 폭주해 사실상 주민번호 도용 피해에는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능을 막 치른 박 모(19)양은 자신이 접촉하지도 않은 유명 게임사이트에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박양은 자신의 주민번호가 같은 숫자가 반복돼 외우기 쉬운 번호여서 단 한 차례 피해에 그칠 것 같지 않다는 걱정에 바로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신고를 접수했다.


센터에서는 박양의 거주지인 해운대 경찰서에 문의하라고 안내했지만, 경찰은 박양에게 아이디 로그 기록과 계정기록을 알아 오라는 알아듣기 어려운 과제를 줬다.

그나마 의미도 잘 모르는 로그 기록을 알아내기 위해 일단 해당 게임사이트에 연락을 했지만, 해당 업체측 전화는 일주일 내내 자동응답기 음성만 들릴 뿐이었다.

박양은 "요즘 주민번호를 도용해 아이디에 접속한 뒤 돈을 뺏는 메신저 피싱이나, 아이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불안한 마음에 빨리 신고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도용자 처벌은커녕, 게임 사이트 담당자와 통화하는 것도 어려웠다"면서 "경찰도 가족들이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단 가족들에게 먼저 알아보라고 귀찮은 듯 답변해 황당했다. 우리 인터넷 환경은 초고속으로 가고 있지만, 피해 신고와 구제는 여전히 386 컴퓨터 수준"이라고 말했다.

권 모(40)씨도 최근 인터넷을 하던 중 유명 포털사이트에 자신이 이미 회원으로 가입된 사실을 알고 처리 절차를 알아봤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절차도 까다롭고 IT관련 용어도 이해하기 힘들어 그냥 무시하고 넘겼다가 큰 낭패를 봤다.

누군가 자신의 주민번호로 수차례 대출상담을 받으면서 신용등급이 갑자기 낮아진 것이다.

지난 2007년 3월부터, 단순 주민번호도용도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주민번호 도용 피해는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올 들어 부산경찰청 사이버팀에 접수된 주민번호도용 신고는 200여 건.

법안이 시행된 첫해 신고가 폭주한 이후 다른 심각한 사이버범죄가 늘면서 주민번호도용 신고는 상대적으로 줄고 있지만,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일 뿐 실제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같은 분위기를 틈타 주민번호생성기 프로그램은 더 지능적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교묘하게 인터넷에 퍼지고 있고, 주민번호 도용을 확인해준다고 광고한 뒤 오히려 개인정보를 빼가는 가짜 사이트도 많이 생겨나고 있어 보다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신고 시스템으로는 도용자를 밝혀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경찰에 신고를 접수하려면 도용된 사이트의 로그, 접속 기록 등을 피해자가 직접 확인해야 하는데, 업체와 전화 연결도 힘들고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각종 사이트들이 로그 기록을 2-3개월 정도만 보관하고 있어 이미 도용사실을 알았을 때는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 힘들고, 막상 도용자를 적발하면 경찰의 처벌을 받을 수 없는 14세 미만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요즘 인터넷 도박, 인터넷 쇼핑 사기 당장 급한 사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경찰 인력과 장비는 몇 년째 그대로여서 현실적으로 신고를 100% 수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개인정보 침해사고로 인한 손실은 모두 10조 7천억 원.

정부가 주민번호 도용 대책으로 내놓은 사이버 신원 확인 번호 ''아이핀''마저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허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시민 각자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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