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연쇄사망 유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

입증책임 떠맡은 피해자들…생업 종사하며 의사과실까지 직접 밝혀내야

두번째 사망자의 남편 이모(47)씨. 그는 생업에 종사하며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야하고 의사의 과실까지 밝혀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장규석 기자/부산CBS)
"멀쩡했던 저희 가정이 왜 이렇게 됐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보다 단란했던 가정이 조금 예뻐진다고 수술하러 갔다가 이렇게 죽어서 와 버리니까… 우리 애들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저도 너무 힘들었고..."

부산진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두번째 사망자 김 모(44.여)씨의 남편 이 모(47)씨는 아직도 아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를 떠나보낸 슬픔도 잠시 이 씨는 현재 또 다른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다름아닌 입증책임 문제다.

의료분쟁과 관련한 재판에서 현행 제도는 사고 원인을 입증하는 책임을 소송을 제기하는 쪽에 부과하고 있다. 의료사고는 대부분 피해자가 환자인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 또는 피해자 유족들이 의사의 실수를 밝혀내야 하는 것이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씨는 아내가 있을때는 마음놓고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녀들이 집에 제대로 왔는지 밥은 먹었는지 엄마의 빈자리까지 채워줘야 한다.

여기에 사고와 관련한 서류들을 챙겨야 하는데, 해당 성형외과에서 과실을 밝히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인 진료기록부를 받아오는 것도 힘들었다.

이 씨는 "간호일지와 진료기록일지 등 세부데이터를 다 달라했는데 달랑 석 장 받아온게 전부고 기재 내용들이 보잘 것 없었다"며 이나마도 "병원에서 기록한 것이 이것이 전부라는 확인 도장을 찍어달라는 요구는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 씨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경찰이 사고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분쟁에서는 경찰이 개입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증책임은 오로지 피해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제조사가 입증 책임지는데…"


이 씨는 지난 9월 법원이 자동차 급발진 사고의 입증책임을 자동차를 제조한 회사가 지도록 한 내용을 들어보였다.

이 씨는 "(의사가) 직접 자기가 마취하고 수술을 다했기 때문에 수술 이력을 자기만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은 모르지 않느냐''''며 ''''기술적인 부분이나 의학적인 부분이나 모든 것들을 의사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의사가 과실이 없다고 입증하는 쪽이 마땅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의료사고나 의료분쟁에서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문제는 지금 국회에서도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는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발의한 ''의료분쟁 조정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 민주당 최영희 의원의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의료사고 피해구제법 국민청원안'' 등 세가지 법안이 검토되고 있다.

국민청원안은 보건의료기관이 무과실을 증명하도록 해 입증책임을 의사가 지도록 했고, 심 의원과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중립적인 ''의료분쟁 조정위원회'' 또는 ''의료사고 피해구제위원회''를 설치해 이들이 과실여부를 조사하도록 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각 계의 의견을 수렴해 조정안을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의료사고나 분쟁을 해결하는 정부기구인 ''조정중재원''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국회까지 올라간 입증책임 전환문제…첨예한 찬반 주장

시민단체에서는 "중립적인 기구나 위원회를 설치하더라도 그 조사에는 의료인이 참여할 수 밖에 없고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며 ''''의료인과 환자사이에는 정보와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의료인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고 입증책임 전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의사에게 입증책임을 돌릴 경우, 의사가 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어려운 수술을 기피하는 이른바 ''''방어진료''''를 하게 되고 소신있는 진료를 할 수 없으며, 관련 소송이 많아지면 의사가 분쟁에 휘말려 곳곳에서 진료 불능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입증책임 전환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들은 또 환자 측에서도 의사가 사고를 회피하기 위해 추가적인 조치를 하기 때문에 의료비가 늘어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도 의료사고와 관련한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각 계의 첨예한 의견대립으로 임기 만료까지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고 결국 폐기됐다.

이번 18대 국회에서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의료사고 관련법안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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