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전주에 사는 72살의 김병규 할아버지.
김 씨는 지난 10월부터 한 달 동안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본부장 남궁 민)가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제24회 가을맞이 편지쓰기 대회''''에서 ''''인내를 먹고 살아온 나의 수호천사''''라는 편지로 대상인 지식경제부 장관상을 차지했다.
초등부는 우선정양(전주 금평초 6)이, 중고등부는 민아름양(강화여중 3)이 각각 대상의 영광을 안았으며, 시상식은 11일 포스트타워에서 열린다.
우정사업본부가 국민정서를 함양하고 편지쓰기 문화의 저변 확대를 위해 1986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이 대회는 입상작을 작품집으로 발간해 전국 우체국과 학교에 배포하고 있다.
김병규씨는 편지에서 ''''힘겨워하던 당신을 아랑곳하지 않고 부서진 허리뼈 통증만 호소했는데도 환자에게 이롭다는 음식을 챙겨주던 당신의 손은 천사의 손''''이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 씨는 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농장에는 하얀 무가 통통하게 자라고 있고, 황토가 수북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고 삶에 몸부림친 당신의 의지에 부끄럽기 그지없었다''''고 썼다.
김 씨는 이어 ''''무고를 당해 검찰에 불려갔을 때 마음을 굳게 가지라는 위로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서 ''곱던 얼굴에 패인 골 깊은 주름살은 영광의 계급장''''이라며 사랑이 감정을 드러냈다.
김 씨는 약속도 했는데, ''''완쾌되면 나란히 배당을 짊어지고 팔도강산 유람을 다니자''''고 했다.
남궁 민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번 가을맞이편지쓰기 대회는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이 10% 정도 늘었고 수준도 한층 높아져 경쟁이 치열했다''''면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사랑하고 감사하는 분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면 훈훈한 세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다음은 일반부 대상을 받는 김병규씨 편지 전문 |
| 성 명 : 김병규 주 소 :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훈 격 : 지식경제부장관상 제 목 : 인내를 먹고 살아온 나의 수호천사, 조인순 여사에게 나의 평생 동지 조인순 여사!지겹던 병상생활에서 퇴원하던 날, 심한 풍랑에 회오리치던 집안을 굳건히 지켜온 당신의 노고에 감사하며 이 편지를 쓰오. 당신은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나를 의연하게 지켰고, 부서진 허리뼈의 통증을 호소하던 나를 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주었지요. 수술 뒤 미동도 할 수 없을 때 간병하던 당신의 마음은 강철보다 더 강했고 당신의 손길은 비단결보다 더 부드러웠어요. 간병 50여일, 당신은 좁디좁은 간병인 자리에서 앉아 졸거나 오그리고 누워 날밤을 보내며 나를 보살폈지요. 힘겨워하던 당신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통증만 호소했지요. 그 힘겹던 순간에도 환자에게 이롭다는 간식거리를 챙겨 우리 입원실 여섯 명의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던 당신의 손이 천사의 손처럼 아름다워 보였어요. 당신의 정성어린 간병에 통증이 완화되고 통원치료를 권하는 주치의의 의견 따라 퇴원을 했지요. 집으로 온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말끔히 정돈된 집안, 내 글방은 병실로 꾸며져 있었지요. 뒤란 꼬마농장에는 어느 새 파종했는지 하얀 무가 통통하게 자라고 있고, 땅심(地力)을 높이려고 퍼다 놓은 황토가 겨우내 외양간에서 받아놓은 퇴비장만큼이나 수북이 쌓였더군요. 삼복더위에 1㎞ 거리가 넘는 병원을 오가며 간병하던 당신이 어느 틈에 그렇게 일을 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삶에 몸부림친 당신의 의지 앞에 나는 부끄럽기 그지없었다고. 스물세 살 곱던 당신을 부부라는 인연으로 만나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면서 오늘까지 왔지요. 험난한 세상 살아갈 준비도 없이 결혼하여 신혼살림이란 둥지를 틀었습니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맨손으로 살아갈 길을 찾았습니다. 고향 떠난 사람의 집과 잡초 우거진 논밭을 전세로 얻어 농사를 시작했지요. 유복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나 일을 모르고 자란 당신의 곱던 손은 닳아빠진 갈퀴처럼 앙상했지요. 그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나를 따라준 당신이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조인순 여사!우리는 4,000평이 넘는 농토에 희망을 걸고 밤을 낮 삼아 일을 했지 않소. 땀 흘린 대가는 해마다 풍년 농사였고, 불어나는 살림에 보람을 찾았지요. 고달픈 농군의 삶에서도 네 자식을 얻었습니다. 농사에 힘겨워 자식들을 보살피는 일에 소홀했으나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지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상을 받아올 때 우리 부부는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당신도 그때가 기억나지요? 우리 부부가 성실히 살아오는 동안 고향사람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나에게 변산 농업협동조합 조합장의 큰 책임을 맡겨주었습니다. 내가 조합장이 되었을 때 당신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당신의 격려는 나에게 용기와 큰 힘이 되었지요. 나는 성공한 조합장이 되려는 욕심으로 온갖 정력을 다 쏟아 부었지요. 집안일은 모두 당신에게 맡기고 조합 일에만 밤낮으로 매달렸지요. 당신은 공직자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한 줄 압니다. 아이들이 모두 전주로 유학하여 자취를 했지요. 당신은 매주 200리 길을 오가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었죠. 집안일도 모두 당신의 몫이었고요. 합숙하며 밤낮으로 일하던 20여 명의 조합 직원들의 찬거리까지 챙기던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질 때 나는 앞이 캄캄했지요.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데 나는 조합 일에 정신이 팔려, 당시의 고통엔 관심조차 없던 게 사실이었소. 당신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때 얼마나 감사했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조합장이던 내가 무고를 당하여 검찰에 불려 갈 때, ''''당신의 결백은 하늘이 알 테니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라며 격려하던 당신의 위로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지요. 당신의 내조가 나에겐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땀의 대가는 분명하여 조합은 영세조합에서 성장자립조합으로 승격되었지요. 내가 농협중앙회장의 표창을 받아오던 날, 당신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지요. 안일한 생활과 행복을 멀리한 채, 모진 세월의 아픔을 참아온 당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가슴이 뭉클하오. 당신이 걸어온 고난의 길을 거름으로 철없던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소? 모두 당신의 강철 같은 모성애의 결과라 믿으오. 나와 만나 46년, 그 긴 세월의 강물에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그리움이 있었고, 태풍 몰아치던 사나운 풍랑도 있었지요. 때로는 질병과 싸우고 가난과 힘겨루기 할 때도 있었지요. 그때마다 흔들리는 나에게 당신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오. 고난을 인내로 몰아내자 부르짖던 당신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이 떠오르는 구려. 당신은 정녕 내 가슴속에 숨겨둔 보석 같은 사람이오. 긴 세월의 강을 건너 우리도 어느새 황혼의 들녘에 서 있구려. 당신의 곱던 얼굴에 패인 골 깊은 주름살은 우리 가정을 지킨 영광의 계급장이오, 당신의 하얀 머릿결은 바르게 자란 자식들이 달아준 훈장이라 여기시구려. 인생은 무엇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지 않던가요? 우리가 비록 밑바닥 인생길에서 고난의 터널을 거쳐 왔지만 바른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남에게 조그만 피해도 주지 않고 정직하고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믿소. 이 모든 영광이 인내를 먹고 살아오며 나를 지켜준 당신의 덕이요. 내가 젊은 시절 당신에게 약속한 것이 하나 있지요. 아이들 기르고 가르친 뒤에는 우리 부부가 나란히 배낭을 짊어지고 팔도강산 유람이나 실컷 다니자는 약속 말이오. 이제 내가 완쾌되면 그 약속을 꼭 지키리다. 내가 건강을 회복하여 그 약속을 지키는 날, 우리가 부부로 오랜 세월을 살면서 하지 못했던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그 한마디를 분명히 해 드리리다. 2009년 10월 17일 당신의 평생 동지 김병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