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정책을 왜 비장애인이?"…교통약자가 바라는 세상

[소수자, 후보에 바란다①]
교통약자 장애인이 바라는 세상
"혼자서 집밖으로 나가기 두렵다"
무장애 환경도 아닌데다 인프라 부족
주요 정책마다 장애인 목소리 배제
"정책 수립 때 장애인 참여 필요"
"장애인 공약도 로드맵 제시해야"

지난 20일 만난 지영하 씨. 고상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장애인 정책을 왜 비장애인이?"…교통약자가 바라는 세상
(계속)

"비장애인들이 모르는 고충이 있지만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지난 20일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인근에서 만난 지영하(75)씨는 이같이 하소연했다. 휠체어를 탄 그는 2010년 6월 10일 갑작스런 뇌출혈로 다시는 걷지 못하게 됐다. 지씨는 "선거 때마다 장애인을 위한 공약이니 뭐니 하지만 정작 현실에 안 맞는 정책들만 나온다"고 답답해했다.
 

"혼자서 집밖으로 나가기가 두렵다"


지씨가 말한 비장애인들이 모르는 고충이 무엇일까. 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어디든 자유롭게 편히 갈 수 있어야 하지만 제주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대체적으로 휠체어가 다니기에 인도 폭도 비좁고 교통 안전시설도 부족해서 홀로 집밖을 나서기가 두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애인이 자주 찾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주변만 둘러봐도 인도랄 게 없고, 골목골목마다 주차된 차량 때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혼자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거 때마다 장애인단체가 투표소 점검에 나서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교통약자에게는 '문턱'이 높다.

교통약자 지원차량이 운영된다 해도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수차량은 많지 않다 보니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허다하다. "신청자가 몰리다 보면 길게는 2시간가량 기다릴 때도 많다"는 것이다. 스스로 집밖을 나설 수 있는 무장애 환경도 아닌데다, 교통약자의 '발'도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교통약자 지원차량. 고상현 기자

제주도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에 따르면 회원으로 등록된 도내 중증 보행약자 수는 모두 4786명이다.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특수차량은 69대로 법정기준 대수(67대)를 충족하고 있지만, 1대당 25명이 이용하는 셈이다. 특히 도외 회원(6873명)까지 이용하면 대기 시간은 더 길어지게 된다.
 
그는 "제주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집밖에 나가고 싶어도 마냥 교통약자 지원차량 오는 시간에 맞출 수밖에 없어서 수동적이게 된다. 이런데도 행정은 도내 교통약자 지원차량이 법정기준 대수를 충족한다고만 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말했다.

주요 정책 결정마다 장애인 목소리 배제


그동안 제주에서 주요 정책 결정마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배제되기 일쑤다. 대표적인 게 섬식 정류장과 양문형 버스를 대표로 하는 제주형 간선급행버스체계(BRT) 사업이라고 한다.
 
이지혁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IL지원팀장은 BRT사업 초기 섬식 정류장을 찾았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기억했다. 교통약자 장애인인 그가 정류장 안에 들어가려고 보니 이용객 휴식공간으로 마련된 탁자 주변으로 의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BRT사업은 민선 8기 제주도정 주요 사업으로 추진됐지만, 장애인 의견은 처음부터 들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이 들어섰다. 나중에 개선 요청을 해서야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처음부터 의견을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상현 기자

민선 6기부터 제주에서 유니버설디자인, 무장애 관광 등의 정책이 추진됐지만, 교통약자 장애인에게는 공허하기만 하다. 그는 "혼자서 버스 타기도 힘든데 관광지에 가는 건 엄두도 안 난다. 장애인 정책이란 게 서로 보완하고 연결돼야 하는데, 별개 사업으로 추진돼서 연속성이 없다"고 했다.

이 팀장은 "제주도 교통약자 이동 편의 증진계획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 소극적이다. 대부분 저상버스 전환 등 차량 대수 확보에만 치우쳐져 있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연속성이다. 보행 환경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고 내리는 환경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책 수립에 장애인 참여 제도화 필요"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창헌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각 후보에게 주요 정책을 추진할 때 장애인 당사자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그는 "현재 도시환경이나 도로든 어떤 계획을 수립할 때 성 평등을 실현하려고 각 심의위에 여성을 참여시키지 않나. 마찬가지로 장애인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각 심의기구에 장애인 당사자를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이래야만 정책을 추진할 때 장애인이 소외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금껏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장애인 공약을 보면 '복지 예산을 얼마만큼 늘리겠다'는 식의 선언만 있었는데, 장애인 유권자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이 담긴 로드맵 제시도 필요하다고 했다.
 
송창헌 센터장. 고상현 기자

그는 "후보들의 공약부터가 '복지 예산 30% 증액' 이런 식으로 발표되다 보니 선거 끝나면 복지시설에 예산만 지원해놓고 끝나 버린다. 후보의 복지 철학이 녹아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장애인 유권자들도 의견을 내고 당사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교통약자 장애인들도 축제나 관광지에 가고 싶다. 하지만 현재 도내 곳곳 환경은 스스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장애인이 편리하면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 모두가 쾌적한 환경이다. 사업이나 정책을 추진할 때 장애인 권리 중심으로 고민해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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