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현수막 공해'…과잉 혐오·비방에 정치가 질린다

"감옥 가라" 막말 난무…정책 없이 혐오만 남았다
현수막 공해…원색적 비방에 커지는 시민 피로감
정당 현수막 규제 실효성 물음표…전문가들 지적

경기도 의정부시에 걸려있는 선거 현수막의 모습. 박인 기자

지난 19일 경기 의정부시 도심 주요 교차로 곳곳에는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자"라는 문구 바로 아래 "그래서 윤석열이 감옥에 갔습니다"라는 정당 현수막이 나란히 내걸렸다. "개헌은 공산주의로 가는 길 터주기, 온 국민은 일어나서 필사 저지하자" 등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맹목적 비방도 난무했다. 정책이나 민생에 대한 메시지 대신 자극적인 문구와 원색적 비난으로 채워진 현수막 공해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시민도 학부모도 눈살… "아이들이 정치를 싸움으로 배울까 우려"

서울 송파구에 거주 중인 이모(35)씨는 "출근길마다 현수막이 보이는데 최근 정치 상황과 맞물려 정책이 아닌 비방용 문구가 눈에 띄게 많아진 느낌"이라며 "선거운동보다 서로 헐뜯는 게 중요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학부모들의 우려가 크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성철(45)씨는 "아이가 '저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민망하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기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수진(54)씨 역시 "아이들이 거리에서 혐오나 비방 표현을 자주 접하면 정치를 그저 '싸우는 것'으로 인식하게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이러한 네거티브 현수막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투표를 고민 중이라는 유모(28)씨는 "후보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는 상황에서 비방 현수막만 보니 '그냥 안 뽑는 게 답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대학생 주다연(24)씨도 "서로 범죄자라고 공격하는 내용만 보이니까 정치 자체에 질리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걸린 선거 현수막의 모습. 박인 기자

단속 건수 1년 새 84% 급증… 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

정당 현수막은 설치 장소와 방식 등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받는 일반 현수막과 달리, 정당법을 근거로 예외 규정이 적용된다. 2022년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정당 현수막은 신고나 사전 허가 없이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현수막 난립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불법 정당 현수막 단속 건수는 2024년 5만 5,571건에서 지난해 10만 2,238건으로 1년 동안 무려 84% 급증했다. 최근의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 등이 맞물리며 감정이 격화된 탓으로 풀이된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1월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폄훼·왜곡·혐오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단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실효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하거나 사회윤리를 해치는 표현을 제한하도록 했음에도 여전히 혐오 현수막이 도심을 뒤덮고 있어 단속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 걸린 선거 현수막. 박인 기자

"국민 세금으로 환경오염"… 제도 자체를 바꿔야

전문가와 시민들은 정당 현수막의 '특권'과 '환경오염' 문제도 지적한다. 현수막 제작과 철거, 폐기 비용의 상당 부분은 국민 세금인 정당보조금에서 충당된다. 반면 현수막의 주원료인 플라스틱 합성수지(폴리에스터)는 자연 분해가 어려워 대부분 소각처리되며,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직장인 김준희(34)씨는 "버스 정류장 옆 현수막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여서 내려야 할 정도"라며 "SNS가 발달한 시대에 환경 문제를 생각해서라도 굳이 현수막을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박모(36)씨 역시 "돈을 내고 합법적으로 게시하는 소상공인 광고를 정당 현수막이 가려 영업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학계에서는 선거운동 방식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자유 보장도 중요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혐오 문구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것은 문제"라며 "환경 낭비나 소음 공해가 없는 다양한 방식의 선거운동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또한 "네거티브 홍수 속에서 부정적인 현수막을 지속적으로 보면 정치적 냉소주의가 확산돼 투표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디지털 매체가 발달한 만큼, 현수막을 달지 않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현수막 제도 자체의 존폐를 논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동작구에 걸린 선거 현수막이 상점의 간판을 가리고 있다. 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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