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와 관련해 기소된 조태용 전 국정원장에게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실형이 나오긴 했지만 대통령실 CCTV로 증명된 위증 혐의에 한해서였고, 내란특검(조은석 특별검사)이 기소한 핵심 혐의인 직무유기 등은 모두 무죄로 결론 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직무유기와 국정원법 위반, 증거인멸,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위증 혐의로 기소된 조 전 원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조 전 원장은 12·3 계엄 선포를 2시간여 앞두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 및 법무·행안 장관 등과 함께 먼저 호출한 인사다. 조 전 장관은 해당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내란국조특위에 답변서를 내고, 같은 내용으로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증언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대통령실 CCTV에는 조 전 원장이 문건을 수령한 모습이 포착됐다. 재판부는 "객관적 사실에 반한 답변임이 인정되고 불과 2개월여 만에 그 기억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조 전 원장이 내란국조특위에 '외교부 장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관련 문건을 받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답변한 것 역시 당시 CCTV 등과 자리배치 상황 등을 토대로 판단 했을 때 허위 답변이라고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 혐의들은 모두 무죄였다. 특검은 국가안보와 관련한 중요 사안을 국회에 보고하지 않은 직무유기 혐의를 최초로 국정원장에게 적용해 법정에 세웠지만, 법원은 '조 전 원장에게 보고의무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직무유기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2시간 이상 미리 위헌·위법한 계엄 선포 사실을 인지한 데다 선포 이후엔 경찰이 국회를 봉쇄한 상황은 물론,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할 권한 있는 주요 인사들에 대한 체포 시도가 이뤄진 점도 알았다고 봤다. 그 자체로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할 직무상 의무가 있는데 수행하지 않았다는 게 공소사실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 전 원장이 계엄 관련 문건을 수령하긴 했지만,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관련 조치사항을 듣거나 지시를 받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특히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중요 진술을 배척했다.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군 방첩사령부의 정치인 체포를 국정원이 지원하라는 취지로 지시했고, 홍 전 차장이 이를 조 전 원장에게 보고했다는 증언이다.
재판부는 "홍 전 차장이 피고인(조태용)에게 정치인 체포의 주체를 방첩사로 명시해 보고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홍 전 차장의 독대 보고 내용을 통해 정치인 체포를 대통령의 지시로 인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무죄 사유를 밝혔다. 홍 전 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에 대한 '기초사실'을 보고받지 못했는데, 정치인 체포를 보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 국정원법에 따른 대국회 보고의무가 발생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홍 전 차장으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비상계엄 과정에서 발생한 풍문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조 전 원장이 내란국조특위에서 '홍 전 차장으로부터 정치인 체포 지시에 관한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허위 증언한 혐의(국회증언감정법 위반)도 무죄 선고했다.
홍 전 차장의 동선이 담긴 국정원 CCTV 영상을 국민의힘 측에만 제공하고 자신의 동선이 담긴 영상은 더불어민주당 측에 제공하지 않아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의무를 위반한 혐의 역시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외부 기관의 공식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영상자료 제출) 검토를 진행했고, 해당 영상을 국회에 이메일로 발송하면서 사후적으로 했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정치관여 의도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외에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홍 전 차장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점도 국정원법 위반으로 보지 않았다. 국정원 수장으로서 관련 의혹을 해명하고 조직 안정을 위해 한 행위라는 판단이다.
정치인 체포 관련 대화가 담긴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의 비화폰 정보 삭제에 관여한 증거인멸 혐의도 보안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며 무죄 선고했다.
2024년 3~4월 삼청동 안가 회동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한 조치'를 언급한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한 점과 대통령 집무실 원탁 탁자에 놓인 비상계엄 관련 종이를 못봤다고 위증한 혐의도 기억의 한계 등을 사유로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국정원장으로서 국회의 질의에 최대한 성실히 사실대로 답변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국민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하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어야 함에도 자신의 책임을 축소·은폐하고자 허위 답변서를 작성하고 국회에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에 그치지 않고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윤석열 탄핵사건에서 위증을 해 선서한 증인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헌재가 대통령 탄핵 여부를 심리·판단하는 것을 방해했다"며 "국민을 기만하고 신뢰를 크게 훼손한 점에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다만 유리한 양형이유로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데엔 계엄 선포와 관련해 국정원의 관여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 언급됐다.
선고 직후 특검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해 무죄 부분에 대해 항소하겠다"며 특히 법원이 홍 전 차장의 진술을 배척한 부분이 가장 아쉽다고 덧붙였다.
조 전 원장 측은 "홍 전 차장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마치 국정원장이나 국정원이 정치인 체포에 관여한 것처럼 심각한 오해가 유발됐지만 1심 판결이 사실관계를 바로잡았다"며 "인정된 혐의에 비해 양형이 과중한 부분에 대해 항소심에서 타당한 양형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