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돌입 한시간여를 앞두고 정면 충돌을 피했다. 사흘에 걸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사후조정 불성립 선언으로 파국이 코앞으로 다가왔었지만, 20일 오후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재한 최후 교섭에서 노사가 한 발씩 양보해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성과주의 원칙을 지켜내려는 사측과 반도체 적자 사업부까지 챙기려는 노조가 막판까지 평행선을 달렸지만, '적자 사업부 지급 제한' 원칙을 1년 유예하는 선에서 극적인 절충안을 찾았다. 전체적으로 노사 입장이 두루 반영된 이번 성과급 합의안이 확정되면, 재계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별경영성과급 제도화…사측 성과주의 원칙·노조 상한폐지 '절충'
삼성전자 노조가 21일 공개한 잠정합의안을 보면, 노사는 연봉의 50%를 상한으로 두는 기존 OPI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초호황을 맞은 반도체(DS) 부문에 대해서는 연간 영업이익 목표 달성 시 '상한 없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한 사업성과의 10.5%로 삼기로 했다. 해당 사업성과가 무엇인지 대외적으로 공개되진 않았지만 그간의 경과를 고려하면 영업이익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측은 영업이익의 9~10%, 노조는 13~15%를 주장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절충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특별경영성과급의 유효기간은 10년으로 SK하이닉스와 동일하다. 단 목표 영업이익을 달성했을 때만 지급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사측은 2026~2028년 3년 동안 반도체 부문 연간 영업이익이 200조 원을 달성했을 때만 특별경영성과급을 지급하고, 그 뒤 2029~2035년까지는 매년 영업이익 100조 원 달성을 지급 조건으로 걸었다. 성과급 상한 폐지와 제도화라는 노조의 핵심 요구가 사실상 관철된 것이다.
특별경영성과급 지급 방식은 현금이 아닌 전액 자사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은 즉시 매각이 가능하지만, 3분의 1은 1년 동안, 나머지 3분의 1은 2년 동안 매각 제한을 두기로 했다.
막판 최대 쟁점이었던 반도체 부문의 각 사업부별 특별경영성과급 배분 비율에는 사측의 원칙이 반영됐다. 해당 성과급 재원의 40%만 부문 전체에 균등 배분하고, 60%는 실적에 따라 사업부별로 나누기로 한 것이다. 후방 지원 부서(공통 조직)의 경우에는 메모리 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만 가져가도록 했다. 특히 적자사업부에는 반도체 부문 균등 배분액의 60%만 지급하는 '제한'을 뒀다.
'성과가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핵심 흑자 사업부인 메모리 사업부에 보상을 몰아주겠다는 의도다. 단, 적자 사업부에 대한 지급 제한은 1년 유예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의 중재 하에 노조의 요구를 사측이 일부 수용함으로써 타협을 본 것이다.
앞서 노조는 영업이익의 13~15%를 총재원으로 삼아, 이 중 70%는 반도체(DS) 부문 공통으로 균등 지급하고 나머지 30%만 사업부별 실적에 연동하자고 주장했다.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적자 사업부도 같은 DS 부문으로서 성과급을 챙겨야 한다는 논리였다.
재계 맏형 삼성전자도 바꿨다…성과급 표준 되나
노조는 이번 잠정 합의안에 대해 22일 오후 2시부터 27일 오전 10시까지 조합원 찬반투표를 할 예정이다. 과반 찬성표를 얻으면 합의안이 확정된다. 이렇게 되면 향후 다른 기업들의 노사 협상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SK하이닉스에서 파생된 영업이익과 연동된 성과급 요구가 다른 하청·협력업체는 물론, 자동차 및 IT 등 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 맏형 격인 삼성전자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추가 반영해 성과급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 업체 노조에서도 지급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성과급도 영업이익에 맞춰 지급하라는 취지의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전문가들도 삼성전자가 반도체 성과급 상한을 조건을 달아 폐지하고, 재원도 사업 성과로 삼으면서 국내 기업들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시립대 송헌재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로서는 지금까지 고집했던 성과급 지급 기준을 깨면서도 성과주의 원칙을 지켰다"라며 "10년을 유효기간으로 정하면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 (삼성전자 노사 합의안이) 새로운 성과급 지급 기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합의에 앞서 "투자자들의 경우 위험과 손실을 부담했으니 당연히 이익을 나눠 갖는 권한을 갖는다. 영업이익을 배분받는 건 투자자와 주주"라며 "영업이익을 세금도 떼기 전에 일정 비율로 제도적으로 나눠 갖는 것은 투자자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노조의 요구에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 풀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