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식스(KEEP SIX) 지누션(Jinusean) 원타임(1TYM) 페리(PERRY) 휘성(WHEESUNG) 스위티(SWI.T) 렉시(LEXY) 마스타 우(MASTA WU) 세븐(SE7EN) 빅마마(BIG MAMA) 거미(GUMMY) 소울스타(SoulstaR) 빅뱅(BIGBANG) 무가당 지은 투애니원(2NE1) 이하이(LEE HI) 악뮤(AKMU) 위너(WINNER) 아이콘(iKON) 블랙핑크(BLACKPINK) 트레저(TREASURE)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
전신인 현기획 시절인 1996년에 시작해 법인명을 2026년 현재까지 30년 동안 YG엔터테인먼트 및 자회사에서 '데뷔'한 팀만 이렇게 많다. 스토니 스컹크(Stony Skunk), 45RPM, 싸이(PSY), 에픽하이(Epik High), 젝스키스(SECHSKIES) 등 영입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YG에 몸담았던 아티스트는 더 많아지고, 음악도 한층 풍부해진다.
한국 가요계에 큰 충격을 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해 큰 사랑을 받은 양현석은 일찍이 제작자로 변신했다. 본인의 별칭에서 따온 양군기획을 세워 1998년 법인으로 전환했고, 2001년에는 YG엔터테인먼트로 법인명을 바꿨다.
'초창기'의 YG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흑인 음악'(Black Music, '흑인 음악'과 '블랙 뮤직' 둘 다 쓰이는 표현이나, 이 시리즈 안에서는 '흑인 음악'으로 통일한다)의 적극적 수용이다. 다수 전문가는 YG가 당대 가요의 주류였던 발라드나 댄스 팝이 아닌 흑인 음악, 그중에서도 힙합과 알앤비를 적극적으로 껴안아 다른 기획사와는 '구분되는' 지점을 만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강일권 음악평론가는 "흑인 음악이 아직 한국에서 마이너 장르로 여겨지던 시기, YG는 힙합과 알앤비의 대중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라고, 차우진 엔터문화연구소 대표는 "YG가 한국 대중음악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힙합·흑인 음악 어법을 아이돌 시스템에 이식한 것'이다. 당시 주류였던 발라드·댄스 팝 문법을 비껴간 것이, 지금 와서 보면 꽤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바라봤다.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흑인 음악과 가요, K팝의 하이브리드화(化). YG 이전에도, YG 바깥에도 알앤비와 힙합 가수, 음악은 존재했지만, YG의 음악은 이를 좀 더 체계적이고 상업적으로 K팝에 뿌리내리도록 했다"라며 "가요 감수성의 음악에 흑인 음악 스타일의 보컬, 댄스 퍼포먼스를 결합해 메인 스트림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라고 짚었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는 "90년대만 해도 한국 대중에 낯설던 흑인 음악을 트렌디한 아이돌 팝, 가요로 완성도 높게 풀어냈다"라고 말했다. 최승인 음악평론가 역시 "힙합/알앤비를 기반으로 한 음악을 꾸준히 여러 팀을 통해 소개해 온 점, 그리고 그 안에서 그룹 내 작곡 가능한 멤버들과 내부 프로듀서를 꾸준히 영입해 'YG 프로덕션'이라 부를 만한 사운드의 결을 확립했다는 점"을 "YG의 가장 중요한 성취"로 봤다.
그러면서 "테디와 페리에서 출발한 이 흐름이 베이비몬스터까지 이어지는 동안, YG는 한국 힙합/알앤비 씬에 단순한 영향이 아니라 하나의 미감, 하나의 태도를 만들어냈다고 봐도 좋겠다. 메인 스트림에 머무르지 않고 서브 장르 쪽까지 그 결이 흘러 들어가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부연했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초창기 YG는 힙합을 비롯한 흑인 음악을 대중에게 친숙한 영역으로 끌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회사"라며 "지누션과 원타임 같은 직계 라인업은 물론, 휘성·거미·빅마마·원티드가 거쳐 간 엠보트, 그리고 45RPM과 스토니 스컹크를 품었던 YG 언더그라운드에 이르기까지, 'YG'라는 우산 아래는 늘 장르 음악의 다양한 결이 공존했다. 상업적 안전지대 바깥에 놓인 '장르 음악'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한 단계 넓혀낸 공로는 결코 가볍게 평가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평했다.
"힙합 레이블로 시작해 지금의 K팝 기획사로 순조로이 전환한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라고 운을 뗀 랜디 서 음악평론가는 "90년대 말 당시 힙합은 한국 가요계 주류 장르가 아니었으나, 힙합의 '쿨'한 애티튜드는 젊은 세대에게 각광받았고 랩과 춤, 밤 문화(nightlife)에 관심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미국 현지에서 힙합을 즐기던 교포 청년들이 인종 장벽으로 한국에 돌아온 것도 중요한 흐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랜디 서 평론가는 "산하 레이블에서 좋은 시도를 많이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보컬리스트 위주인 엠보트 레이블을 흡수하면서, 당시 랩 음악 위주였던 YG의 팔레트가 흑인 음악 전반으로 풍성해졌다"라며 "YG는 정통 아이돌과는 조금 달랐던 원타임, 휘성, 거미, 세븐, 빅마마 등 알앤비 아티스트들,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렉시 등이 히트하며, K팝이 본격화하기 전 가요계를 오히려 쿨하게 장악했다"라고 진단했다. 타블로와 테디를 중심으로 각각 하이그라운드, 더블랙레이블과 같은 레이블을 두었던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흑인 음악을 대중음악 시스템 내부로 끌어당긴 점"을 YG의 '혁신'이라고 한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이런 점을 통해서 일본과는 다른 아이돌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게 크지 않을까"라며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힙합 스타일을 시도한 아이돌과 그룹이 없진 않았지만, YG는 이를 아이돌에 도입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기획사의 '전체적인 운영 기조'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꽤 큰 점"이라고 분석했다.
성 평론가는 "회사 전체를 흑인 음악의 중심지 같은 느낌으로 만들려고 했달까. 지금이야 그런 콘셉트가 많이 해체됐으나, 초기 YG는 일종의 '힙합 크루'를 지향했던 건 그 상징적인 모습"이라며 △'YG패밀리'로서 합동 앨범 발매 △흑인 음악 잡지 '바운스' 발간 △힙합 아이돌과 본격적인 알앤비 구사 가능한 가수 기획 △힙합과 레게를 하는 아티스트 기획 및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을 그 예로 들었다.
흑인 음악에 집중했던 초기 행보가 이후 아티스트 기획에도 연결됐다는 게 성 평론가 생각이다. 그는 "이전의 지누션, 원타임에 비하면 그룹 차원의 힙합 농도는 많이 낮아졌어도 흑인 음악 감성을 아이돌 댄스나 팝에 적용하는 감각이 경쟁사와는 다른 부분을 만들어냈다. 지드래곤은 솔로 활동에서 좀 더 깊게 힙합을 시도했고, 에픽하이를 영입하는 등 흑인 음악을 근간에서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2006년 데뷔한 빅뱅이 대히트하면서 'K팝 기획사'의 이미지가 더 선명해진 YG는 어떤 '빛나는 순간'을 남겼을까. 우선 정 평론가는 "2006년 빅뱅, 2009년 2NE1으로 K팝 내 랩의 차원을 격상시킨 점을 빼놓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장 평론가는 "기존 정체성이었던 흑인 음악에, EDM이라는 소행성을 강렬하게 충돌시켜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K팝에 '얼터너티브'라는 개념을 주류로 끌어올린 순간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힙합/알앤비를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빅뱅을 기점으로 2000년대 일렉트로 팝과 EDM을 빠르게 흡수하며 K팝 안에서도 분명한 차이점을 만들어냈다. 그 흐름은 2NE1으로 이어지며 색이 분명한 실력파 그룹이라는 상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YG가 어떤 그룹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 회사인지를 대중에게 각인하는 분기점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힙합/알앤비 씬과의 끊임없는 교류는 YG의 또 다른 정체성"이라며 "지누션 3집에 모브 딥의 프로디지, 사이프레스 힐의 비-리얼, 치노 XL이 참여한 데서부터 본토 힙합에 대한 인정 욕구는 이미 분명히 드러나 있었고, 이후로는 퍼렐, 디플로, 미시 엘리엇 같은 거장들과의 협업으로 소속 아티스트의 아우라를 키우고 해외 시장에 대한 활로를 끊임없이 뚫었다"라고 소개했다.
K팝 시스템 안에서 아티스트와 아이돌의 경계를 허물어 성공 모델을 만든 점도 자주 거론됐다. 강 평론가는 "특히 지드래곤과 태양을 중심으로 한 빅뱅과 함께 여러 아티스트가 완성도 높은 곡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아이돌과 장르 아티스트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은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꼽았다.
장 평론가도 "당대 주류 아이돌이 회사의 정교한 공정 시스템 아래 탄생한 '완성형 아이돌'을 추구했다면, YG는 철저히 자기 색과 개성으로 무장한 '아티스트형 아이돌'을 내세우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했다"라며 "그 분기점은 빅뱅과 2NE1의 등장"이라고 봤다.
차 대표는 "멤버들이 작사·작곡에 직접 개입하고 앨범 단위로 자기 서사를 가져가는 방식은 당시 아이돌 문화에서 흔치 않았다"라며 대표적 성공 사례로 빅뱅을 언급했다. 황 평론가는 "멤버 개성을 제작의 최우선 가치로 둔 운영 방식을 통해 빅뱅과 2NE1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팀을 만들어냈고, 블랙핑크에 이르러서는 최전선의 사운드와 퍼포먼스를 앞세워 K팝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박희아 음악평론가는 "YG는 전형적으로 예쁘고 잘생긴 소녀와 소년들이 아이돌 그룹을 구성한다는 편견을 깼다. 빅뱅과 2NE1의 존재는 미형의 외모, 깔끔하게 정돈된 음악 스타일에서 벗어나 본인들이 지닌 개성을 살리는 스타일링과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퍼포먼스로 대중형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라고 진단했다.
박 평론가는 "빅뱅은 아이돌 그룹의 주 소비층과는 거리가 멀었던 남성들을, 빅뱅의 음악을 듣고 스타일링을 따라 하는 팬층으로 끌어들였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결집력 강한 팬덤 바깥에서 누구나 즐기는 아이돌 음악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대중적인 아이돌의 레퍼런스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만들어진 YG형 아이돌의 이미지 덕분에 위너, 아이콘, 블랙핑크 등의 팀도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미묘 음악평론가는 "YG에는 브랜딩의 연금술이 있다. 비교적 '후진' 것도 있지만 그것이 힙인 것 같은, '꼰대'스러운 지점도 있지만 그것이 자신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많은 기획사가 표백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통해 과거와 결별하는 K팝을 만들어낸 것과는 아예 다른 회로다. K팝이 무균실에서만 만들어졌다면 도달하지 못했을 스파이시함은 YG에서 만들어졌다"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음악과 패션의 시너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을 또 다른 차별점으로 소개했다. 그는 "세븐의 힐리스(바퀴가 달려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한 신발)를 시작으로 당대 영미(英美) 유행을 재빠르게 포착해 소개했던 빅뱅, 2NE1의 수많은 패션 아이템, 블랙핑크와 여러 럭셔리 하우스(명품 브랜드)의 협업 등 이 분야에서는 어떤 기획사도 따라오지 못하는 감각이 있다"라고 평했다.
차 대표도 "2NE1의 '걸크러시'는 그 개념이 마케팅 언어가 되기 전부터 음악과 스타일로 실천했다. 블랙핑크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전략과의 연계를 가장 정교하게 실행한 K팝 그룹이다. YG 특유의 '스타일 & 정체성 우선' 전략이 작동한 결과"라고 전했다.
성 평론가는 "힙합 색채가 옅어진 2010년대 이후도 '크루'적인 감성을 가져가며 상대적으로 자체 육성 가수·아이돌 이외에도 문을 열어 독특한 색채를 만든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타사가 철저히 자체 기획 아이돌 중심이라면, 마스타 우, 에픽하이, 악뮤 등의 가수를 받아들였던 적이 있는 YG는 '약동하는 느낌을 계속 만들기 위해 신경 쓰는' 점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월드 클래스 아이돌'을 제작해 K팝 산업의 판을 키웠다는 반응도 있었다. 장 평론가는 "블랙핑크라는 걸출한 그룹을 통해, K팝이 품을 수 있는 산업의 스케일을 끌어올려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최 평론가도 "한국에서는 막연하게만 보였던 코첼라 등 글로벌 무대까지 자연스럽게 진입해, K팝이라는 브랜드 안에서 한국 음악 인지도를 넓힌 회사라는 점도 분명히 짚어둘 만하다"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대부분 떠났으나, YG는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을 지닌 여러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황 평론가는 "싸이와 악뮤, 에픽하이, 젝스키스에 이르기까지 결이 다른 아티스트들을 한 지붕 아래 품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지원이 필요한 자리에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는,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이자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YG는 분명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랜디 서 평론가는 "TV 오디션 프로가 중요해진 2010년대엔 '슈퍼스타K2'에서 강승윤을, 'K팝스타'를 통해 이하이와 악뮤를 영입하며 시대에 적응했다. 후에 위너와 아이콘으로 데뷔한 연습생 오디션 프로 '윈'도 흥행했다"라고 밝혔다.
"자사 아이돌의 연이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아티스트를 포섭해 회사의 다양성을 불어넣으려 노력했다"라고 한 장 평론가는 "동시에 소속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한 점이 유효했다. 많은 이들이 YG를 바라볼 때 회사의 단일한 이미지보다 이곳을 거쳐 간 아티스트의 이름들이 떠오른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를 보여준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