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밀린 행보는 종종 말보다 다른 데서 티가 난다.
윤석열의 '개사과'가 그랬다.
"전두환 대통령이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는 희대의 망발에 대선 캠프 전체가 한목소리로 사과를 건의할 때였다. 이틀을 뭉개다 "송구하다"고 밝혔지만 뒤틀린 감정은 그날 밤 인스타그램에 새어나왔다.
반려견 토리가 인도사과를 바라보는 사진 한 장으로, 윤석열과 김건희는 학살의 상처를 다시 헤집었다.
장동혁 대표가 뗀 '5·18 배지'도 비슷하게 읽혔다.
논란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직후 불거졌다. 행사장을 나오던 장 대표는 "우리가 만만하냐"는 광주 시민들과 5·18 헌법 전문 수록에 관해 연신 "한 말씀"을 묻던 지역 기자를 마주했다.
장 대표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슴에 달린 배지를 손으로 떼어낼 뿐이었다. 항의와 질문이 이어지던 그때, 그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이 장면이 입길에 오르자 장 대표는 그게 5·18 배지가 아니라 행사장 입장용 비표였다고 직접 반박했다. 국민의힘 미디어특위는 한술 더 떴다. "퇴장 이후 비표를 자연스럽게 제거했을 뿐"이라며 현장을 포착한 언론을 향해 법적, 제도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취재해온 기자들은 안다. 장 대표가 정치적 메시지에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헤어스타일을 바꾼 것도 정치적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그였다.
그러니 무심한 표정이었다고 해서 그 동작까지 무심하게 봐줄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그날 광주에서의 손짓만은 예외라고 한다. 편리한 해석이다.
광주행은 처음부터 자연스럽지 않았다.
'윤 어게인' 논란은 끊어내지 못했고, 5·18 헌법 전문 수록은 뭉개온 당이다. 별도로 광주를 찾은 최다선 조경태 의원이 지도부의 방문을 두고 "5·18 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직격했을 정도다.
방문 목적이 추모나 성찰보다 '견디기'로 읽힌 건 행사장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석자 대부분이 '임을 위한 행진곡'에 팔을 흔들었지만 장 대표 혼자만 차렷 자세를 취했다.
침묵, 굳은 팔, 배지, 기념식 뒤 내놓은 정쟁성 메시지까지. 한 줄로 놓으면 그의 태도는 꽤 선명해진다.
장 대표와 당의 투톱을 이루는 송언석 원내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더러워서 광주 안 간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돈다. 이쯤 되면 국민의힘이 광주와 5·18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4년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윤석열이 전두환 발언과 개사과로 사고를 쳤지만, 당대표가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하는 등 당 안에서는 어떻게든 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듬해 5·18 기념식에 소속 의원 99명, 즉 대다수가 광주로 내려간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지금은 그런 발버둥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도부가 그러니 전국 조직의 기강이 풀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내일 스타벅스 들렀다가 출근해야지"라는 글이 당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버젓이 올라왔다. 선거를 치르는 공당에서, 그것도 5·18 앞에서 나올 수 있는 농담인가.
전략적으로도 악수다. 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보수 결집 흐름이 감지되던 때였다. 전선을 잡아도 먹힐 만한 곳에서 잡아야지, 하필 5·18 앞이라니. 거기서 나오는 건 '짠물' 지지층이 아니라 '독극물'뿐이다.
장 대표가 뗀 게 배지냐 비표냐는 애초의 핵심이 아니다. 그 배지에는 1980년 옛 전남도청 앞에 모인 시민들을 그린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거기엔 저항과 희생, 서로를 놓지 않았던 연대의 얼굴이 있었다. 장 대표는 그것을 항의와 질문 앞에서 떼어냈다. 그날의 손짓은 말보다 많은 걸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