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무부 '유령 탈북인' 연구용역도 맡겼지만…여전히 방치

[유령이 된 탈북자들④]
법무부, CBS 보도 직후 부랴부랴 현황 파악 나서
2009년 맡긴 연구용역서 "국적 부여해야" 의견
인권단체 "정부 어느 곳 하나 책임지는 곳 없어"
국적 판단 별개로 '유령 탈북민' 인도적 지원 필요

CBS노컷뉴스가 만난 재북 화교 2·3세들인 '무국적자' 김천일씨(좌), 전경수씨(우상), 윤성화씨(우하). 박수연·이원석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이 됐다
②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③"난 중국말도 못 하는 북한 사람"…난민도 안 되는 '유령'들
④[단독]법무부 '유령 탈북인' 연구용역도 맡겼지만…여전히 방치
(계속)

탈북 후 한국에 들어왔지만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는 재북 화교 2·3세들, 정부가 무관심한 태도로 이들의 소외와 고립을 수십 년째 외면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연구용역까지 맡겼으며 해당 연구진은 체계적인 관리 체계를 당부했는데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용역도 맡겨놓고…"실질관계 입각하여"

정부는 재북 화교 혈통의 무국적자가 국내에 몇 명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CBS노컷뉴스는 국적 관련 주무부처인 법무부에 무국적 재북 화교 후손들에 대한 통계나 현황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물었지만 "별도로 작성하거나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법무부는 CBS노컷뉴스의 지난 13일 첫 관련 보도('[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 됐다') 직후 부랴부랴 현황 파악에 나선 상태다. 탈북자 지원 단체인 탈북난민인권연합에서 파악한 국내 재북 화교 2·3세 무국적자는 최소 30여 명이다. 이는 다수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의 신원 보증을 직접 해왔던 단체의 추산으로, 실제로는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무국적 재북 화교 2·3세 문제는 이미 20년쯤 전부터 언론 보도와 연구 등을 통해 지적돼 왔다.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으로 추방됐지만 입국이 거부돼 돌아온 재북 화교 혈통 2세 탈북자 김천일(63)씨의 기구한 사연은 이미 지난 2007년쯤부터 각종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그는 현재도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으며 최근 길거리에서 노숙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

2009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진이 낸 '무국적 관리 및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연구'.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 캡처

특히 법무부는 지난 2009년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를 비롯한 국적판정 불가자에 대한 대응 문제를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인섭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무국적 관리 및 체류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 연구'란 주제의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북한 내 화교 출신 북한이탈주민' 등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하며 관리체계 부재 문제를 지적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김천일씨 같은 사례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법무부 국적과에서 해당 연구용역을 발주했다"고 연구용역의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진은 재북 화교 출신 탈북민들의 국적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서도 이들의 국적 확인을 거부하는 등의 상황을 거론하며 "정부는 화교 출신 북한이탈주민에 대하여 형식논리가 아닌 실질관계에 입각하여 국적을 부여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혈통이나 형식적인 서류 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실제로 북한 사회에서 살아온 삶의 경로와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법무부가 15년 전 연구용역을 통해 이들이 처한 인권 문제와 관련 지적들을 인식했음에도 제도 손질 등 상황 개선에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이다.

법무부는 현재도 이 문제에 대해 "'재북 화교'는 북한에 거주하나 중국 국적을 보유한 사람을 의미하므로 북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한국 국민이 아니"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법무부에서 난민위원회 위원을 지낸 장복희 선문대 경찰행정법학과 교수(국제인권법 전공)는 "부처가 의지나 관심이 없고 너무 20세기의 주권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다"며 "재북 화교 혈통 탈북자들과 같은 사례에 대해 인권 중심적으로 면밀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무국적자 기본권 보장도 부족' 지적도

2007년부터 여러 언론이 김천일씨의 기구한 사연을 보도했다. 한겨레·경기일보·SBS·쿠키뉴스·연합뉴스 보도 캡처

관계부처들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조사를 받는 곳인 국정원 산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정부합동신문센터)의 판단을 토대로 법무부에서 최초 국적을 판단할 수밖에 없단 취지로 언급했다.

탈북민 보호·정책을 주관하는 통일부 역시 재북 화교 혈통 탈북자 문제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 소관이 아니"라며 "국정원에서 대상자를 화교로 판정하면 법무부로 이송되게 되고 저희 쪽으로 정보가 넘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원은 "북한이탈주민법에 따른 보호신청 인원 조사 시 대한민국의 국적법·제도와 함께 중국·북한의 관련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외국인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화교 등 외국인으로 확인된 보호신청자에 대해서는 관련 법에 따라 법무부에 신병을 인계 중"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우광호 북한인권시민연합 국장은 "정부의 어느 곳 하나 책임지는 곳이 없기 때문에 인권의 사각지대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법 규정을 넘어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이나 여러 역사적, 국가적 배경을 고려해 이들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적 판단과 별개로 국내 무국적자들에 대한 처우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법무부는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에 대해 "우리 정부가 1962년 가입한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의 취지와 무국적자로서 사실상 송환이 불가능한 인도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방문동거(F-1) 체류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재 재북 화교 혈통 탈북자 등 무국적자들에게 부여되는 F-1 체류 자격으로는 원칙적으론 취업이 불가하고, 생활에 여러 제약이 따른다. 법무부는 "자격 외 활동 허가를 통해 국내 취업 활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당사자들은 "F-1 체류 자격임을 밝히면 고용주들이 쉽게 채용해 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제법 석학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의 취지는 무국적자들이 직업상, 생활상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조약을 따른다고 하면 실제로 무국적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국내 특별법이 진작 마련돼 이들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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