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우리는 빨간당" 외친 뒤 술상엔 김부겸 얘기가 오갔다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가 17일 대구 수성구 영남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찾자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기호 2번을 뜻하는 손가락 브이(V)를 그려보이고 있다. 박수연 기자

17일 오전 대구 수성구 영남공업고등학교 운동장.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앞두고 테이블마다 동문들이 둘러앉아 부침개에 막걸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빨간 점퍼를 입은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가 모습을 드러내자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빨간당입니다!" 이어 "무조건 추경호", "그래도 국민의힘이지"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추 후보는 테이블 사이를 돌며 악수했고, 시민들이 권하는 소주잔도 받아 마셨다. 쏟아지는 사진 요청에도 연신 응하며 행사장을 훑고 지나갔다.

두돌 아이를 안고 나온 김성훈(25)씨는 "민주당만 이기면 된다"며 "제 주변엔 김부겸 찍는다는 사람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했다. 부침개를 부치던 서정숙(68)씨도 "나라가 말이 아니다. 지금은 무조건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했다.


"대구 정서는 '추경호'인데…"

대구 수성구 영남공업고 총동창회 체육대회에서 만난 정재형(64)씨가 17일 국민의힘 추경호 대구시장 후보와 악수한 뒤 진행한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구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수연 기자

그런데 추 후보가 떠난 뒤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술상에선 "이번엔 대구도 변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다.

파란 점퍼를 입은 더불어민주당 차현민 대구시의원 후보가 테이블을 돌자 달라진 분위기가 확연히 감지됐다. 참석자들은 명함을 받아 들고 "고생한다"며 술잔을 권했다. 추 후보 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큰 환호를 보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후 기자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던 중년 남성들에게 "이번에도 국민의힘이 이기는 분위기냐"고 묻자, 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 조금 전 추 후보를 반기며 악수했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정서는 추경호 후보인데, 대구도 바뀌어야 안 되겠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섬유과 졸업생 정재형(64)씨는 "지금까지 대구에서 그렇게 국민의힘을 밀어줬는데도 얻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아직 결정은 안 했지만, 보수가 변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했다.

"매번 국민의힘을 찍었다"는 자영업자 백승현(50)씨는 "대구·경북이 한쪽만 오래 잡으니까 물이 썩은 느낌도 있다"며 "지금 정권 잡고 있는 여당이 좀 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60대 남성은 "대구 시민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옆에 있던 중년 남성도 "김부겸이 돼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꽤 많다"고 거들었다.

앞서 추 후보가 방문한 수성못 대구아리랑 맨발축제에서도 시민 반응은 앞과 뒤가 달랐다.

추 후보가 등장하자 태극기를 손에 든 중장년 여성들이 그를 둘러싸고 연신 사진을 요청했다. "추경호 파이팅"을 연호하면서다. 한 여성 참가자가 민원을 토로하자 추 후보는 곁에 있던 비서관을 향해 "함자와 전화번호 받아서 챙겨드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중 방현조(83)씨는 추 후보가 지나간 뒤 기자에게 "우리 애들은 '엄마 이번에는 김부겸'이라며 전부 다 김부겸 쪽"이라고 말했다. 방씨는 "젊은 사람들 따라가야지, 나이 많은 사람이 너무 고집부리면 안 된다"면서도 "아직 결정은 안 했다"며 말을 흐렸다.


"이번엔 김부겸" 목소리 커졌지만…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가 17일 대구 서남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수연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를 따라간 현장에서도 변화의 기류는 감지됐다.

이날 오후 김 후보가 달서구 서남시장에 도착하자 일부 상인들과 시민들은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김부겸 파이팅", "사진 한번 찍읍시다"라는 외침도 이어졌다.

장을 보러 온 손성운(63)씨는 김 후보가 시장에 왔다는 말에 "어디 계시나"라며 반갑게 두리번거렸다. 손씨는 "김 후보가 대구시장이 돼야 한다"며 "추경호 후보는 내란 동조자 아닌가. 추경호가 대구를 맡는 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 시민들이 70% 넘는 지지율로 윤석열 정부를 만들어줬는데 나라를 거덜냈다"며 "이젠 책임질 때도 됐다"고 했다. 그는 "김부겸은 집권 여당 후보라 대구 경제를 살릴 힘이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남시장에서 10여 년째 두부 장사를 해온 김광웅(64)씨도 김 후보를 반갑게 맞았다. 김 후보가 지나간 뒤 무슨 대화를 나눴느냐고 묻자, 김씨는 "대구가 GRDP(지역내총생산) 꼴찌인데 30~40년 동안 국민의힘은 뭐 했느냐"며 "힘 있는 사람이 와서 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우(36)씨는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견제를 한다는 건 잘 맞지 않는 이야기 같다"며 "이번엔 특히 (여당 후보를) 더 밀어줘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장 한쪽에서 김 후보의 동선을 계속 지켜보던 금융업 종사자 조팔동(52)씨는 "대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보 단체장이 나온 적이 없지만, 지역 경제를 살리려면 중앙정부와 발맞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지지하더라도 슥 지나가면서 귓속말로 '지지한다'고 했다면, 지금은 시민들이 먼저 뛰어와 이름을 연호하고 사진을 찍자고 한다"며 "이제 주변 눈치를 안 보는 것이다. 답답함과 현실의 어려움이 저를 매개로 폭발하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17일 대구 서남시장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를 만난 김광웅(64)씨가 김 후보가 떠난 뒤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여당 후보인 김 후보처럼) 힘 있는 사람이 와서 대구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연 기자

민주당 '공소취소' 이슈로 보수 결집?

김 후보에게 '대구의 벽'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김 후보가 시장 정문에 들어서려 하자 한 70대 여성은 "우원식이랑 정청래가 왜 5·18 유공자로 돼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 후보는 제지하려는 보좌진을 말리며 1분가량 여성의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시민은 김 후보를 둘러싼 인파를 지나치며 "민주당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김 후보에 대한 기대감은 감지됐지만, 중앙 이슈에 따라 민심이 빠르게 흔들리는 분위기도 읽혔다.

"투표를 아예 포기하려고 했다"던 택시기사 장모(66)씨는 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를 추진하고 정청래 대표 '오빠' 발언 논란을 지켜보면서 국민의힘을 찍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그는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국민의힘 쪽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추 후보는 CBS노컷뉴스 인터뷰에서 "초반엔 당내 갈등과 공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서 실망한 분들이 많았지만, 최종 후보가 확정되고 단일대오가 형성되면서 저에 대한 기대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부총리 출신이 전문성을 갖고 대구 경제를 살려달라', '보수의 심장 대구를 지켜달라', '반드시 이겨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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