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았던 젊은 목회자…고 김영수 목사 추모기도회

인천기독교교회협의회 강화모임·강화시민회의·고난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강화의 김영수 목사, 그날을 다시 듣다'



[앵커]

5·18 당시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려다 옥고를 치른 강화의 한 젊은 목회자가 있습니다.

고 김영수 목사는 최근에서야 정부로부터 공식 5·18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는데요.

강화 지역 시민사회와 기독교계가 함께 그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뜻을 모았습니다.

장세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강화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기독교계가 함께 고 김영수 목사의 삶을 알리는 추모기도회를 열었습니다.

정부가 최근 김 목사를 공식 5·18 민주유공자로 지정하고, 지난해 3월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한 이후 강화에서 처음 열린 공식 추모 행사입니다.

김영수 목사는 평화시장 미성년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 활동과 사회선교에 헌신해왔습니다.

1980년 강화에 창후리교회를 개척한 뒤에도 청년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며 사회적 약자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러다 김 목사는 당시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활동을 하며 농촌 선교를 꿈꾸던 청년 김의기 열사의 죽음을 알게 됐습니다.

김의기 열사는 광주 5·18 참상을 목격한 뒤 '동포에게 드리는 글'이란 유인물을 통해 그 진실을 알리려다 형사들에게 쫓겨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녹취] 백영민 회계 / 강화시민회의 (김의기 열사의 '동포에게 드리는 글' 낭독)
"보이지 않는 공포가 우리를 짓눌러 우리의 숨통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아 우리를 번득이는 총칼의 위협 아래 끌려 다니는 노예로 만들고 있는 지금,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김영수 목사는 동대문교회 야학에서 이 김의기 열사의 글을 접했고 강화 지역 청년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침묵하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책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남영숙 목사 / 고 김영수 목사 아내
"동대문교회 야학에서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입수해서 강화로 가져와서 6월 15일날 강화 지방 청년연합회 철야기도회에서 그것을 배포하고 낭독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당시 한 교인의 신고로 김 목사는 강화경찰서에 체포됐고, 계엄법 위반에 국가원수 모독과 비방죄가 더해졌습니다.

출소 후 고문 후유증으로 시달리던 김 목사는 1984년 급성 백혈병으로 서른 여덟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강화지역 목회자와 시민단체들은 진실을 외면했던 교회와 지역사회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5월 18일에 맞춰 추모기도회를 기획했다며 앞으로도 김 목사의 삶을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윤여군 목사 / 강화 남산교회
"한국 교회가 5·18에 대해서 사실은 제대로 5.18의 의미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교회가 김영수 목사를 통해서 5.18의 목소리를 바르게 듣고 또 역사 앞에 정직하게 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18일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강화 남산교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강화의 김영수 목사, 그날을 다시 듣다'가 열리고 있다. 장세인 기자

참석자들은 당시 김 목사를 위한 탄원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도 외면했던 교회의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의 침묵이 오늘날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전재범 목사 / 영은교회
"내란과 같은 그런 일이 벌어질 때에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갔던 모습처럼 이제는 누구나 다 옳은 건 옳다고 여기고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계속됐으면…"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서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정의라고 믿었던 젊은 목회자.

고 김영수 목사가 남긴 정의의 신앙은 46년이 지난 오늘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다시 묻고 있습니다.

CBS뉴스 장세인입니다.

[영상기자: 정선택]
[영상편집: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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