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나흘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방중하면서 중국의 외교적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이렇게 짧은 시간을 두고 연달아 중국을 찾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틀에 걸친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의 표면적 이유는 2001년 체결된 '중·러 선린우호협력조약' 25주년과 중러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방문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직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중·러 삼각 구도 속에서 중국에게 새로운 균형점을 찾고 외교적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양국은 그동안 유엔 등에서 이란전쟁에 대해 미국의 일방주의적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한목소리를 내왔다. 이번 만남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관영매체인 인민일보는 푸틴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두고 "변란이 뒤얽힌 국제정세 속에 중러 관계의 안정성·확실성은 특히 소중하다"며 "(양국의) 전략적·전방위적 협력 필요성이 더 부각된다"고 밝혔다. 인민일보는 유엔 중심의 국제 질서를 강조하면서 "중러는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시스템을 굳게 지키고 유엔 헌장의 뜻과 원칙을 준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패권에 반대하고 다극화를 추진하며 글로벌 정세를 안정시키는 주요 힘"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란전쟁을 놓고 양국이 미국과 대척점에 설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중국이 이번 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순회 의장국을 맡은 상황이어서 양국은 '다자주의 동맹'을 맺고 미국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두 나라는 상하이협력기구(SCO)·브릭스(BRICS)·주요20개국(G20) 등 다른 다자 무대에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이란전쟁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및 지역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교환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정상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논의를 했는데 전쟁의 당사국인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떠나자마자 빈자리를 채우게 됐다.
베이징외국어대학 추이훙젠 교수는 푸틴 대통령 방중에 대해 "여러 지역의 충돌이 정세상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며 "러시아로서는 미중 고위급 협상 이후 시급히 미중 협상의 핵심 내용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산 석유와 LNG(액화천연가스) 구매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요구한 것도 러시아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가스의 최대 구매국이며 이란전쟁을 전후해 비중을 늘려왔다. 시 주석이 미국의 반대에도 이란 석유를 계속 쓰겠다고 밝힌 만큼 러시아와도 에너지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 및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최고위급 공동성명과 함께 여러 양자 협정도 서명할 예정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에 이어 미국·이란 전쟁의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23~26일 중국을 공식 방문한다. 친중 성향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도 조만간 중국을 찾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