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 "농촌이 쉼터라고요? 제겐 최고의 '사업 무대'입니다" ② 쫓기던 서울살이 '로그아웃'…파도와 가족이 있는 로컬 '로그인' (계속) |
복잡한 대도시를 벗어나면 문화생활과 삶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짐작은 흔한 편견이다.
충남 보령에서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서원상 대표의 일상은 이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한때 "서울에서 살고 싶어" 서울로 향했던 그는, 지금은 지역에서 그가 꿈꾸던 일상과 좀 더 가까워졌다고 했다.
냉장고 연구원, 보령에 '거대한 냉장고'를 세우다
서원상 대표는 과거 대기업에서 냉장고 연구 개발을 담당했던 연구원이다.그의 눈에 작물을 키우는 스마트팜은 마치 '거대한 냉장고'와 같아보였다고 한다.
"냉장고도 음식물이 안 상하거나 오래 유지되려면 온도와 습도를 균일하게 가져가야 하거든요. 스마트팜도 작물이 동일한 환경에서 커야지만 균일하게 클 수가 있고, 그게 온·습도와 다 관련이 있어요. 저는 영농 경험이 없는 순수 창업농이었지만 스마트팜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좀 빨랐던 것 같아요."
온도와 습도를 균일하게 유지해야 하는 열역학의 원리가 농장 제어 체계와 맞닿아있었기에, 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온실의 구조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었다.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그가 선택한 작물은 의외로 농업인들이 가장 기피한다는 '오이'였다. 파프리카나 토마토 등과 달리 매일 수확해야 하는 오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워 모두가 꺼리는 작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 대표는 남들이 피하는 그 고된 노동량을 '경쟁력'으로서 활용했다. 매일 쉴 틈 없이 일해야 하는 탓에 일터 이름도 '괴물처럼 일하자'는 뜻을 담아 지었다.
"문화·교육 소외? 보령서 두 마리 토끼 잡았어요"
창업을 준비하며 그는 과감히 당시만 해도 스마트팜이 전무했던 보령을 택했다.기반 시설이 없는 곳이 오히려 자신만의 차별화된 사업을 펼치고 지자체의 지원을 이끌어내기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그의 삶이 온실 속 일터에만 갇혀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보령은 삶의 질 측면에서 그에게 완벽한 만족감을 줬다. 시내와 농장 간 거리가 차로 10분 남짓으로 멀지 않은데다 바다와 매달 열리는 지역 축제가 일상을 풍요롭게 채운다.
서울에 살 때는 정작 팍팍한 일상 탓에 보지 못했던 뮤지컬과 연극도 보령에서 꾸준히 즐기고 있다.
아이들 또한 승마, 수영, 요트, 관현악단 활동 등 지자체가 제공하는 풍성한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보령행을 반대했던 아내로부터 반 년 뒤 "진작 올 걸 그랬다"는 말을 들었다며 서 대표는 웃어보였다.
"잘 사는 모습이 곧 해법"…길잡이가 되다
서 대표는 온실 안에서 혼자 성공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귀농을 꿈꾸는 또래 청년들의 든든한 길잡이를 자처하고 있다.기자가 서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그의 스마트팜을 찾았을 때, 주변에는 10여 명이 정착을 준비하며 새로운 온실을 짓고 있었다.
"제가 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이런 부분을 좀 알려주고 하면 그 친구들이 저보다는 빠르게 정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돕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리고 그런 청년들이 모여 단지를 이루고 하면 그것 자체가 저는 하나의 모델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농촌에서도 이렇게 청년들이 모여서 살 수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면 그걸 사례로 해서 많은 지역에서 새롭게 만들고 고도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서 대표는 지역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 지방의 매력을 다 말하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치열함과 여유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이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기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모입니다. 그게 지금 저희가 하는 역할 같거든요. 저희가 그걸 보여준다면, 인구감소지역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정책이 쏟아진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강력한 해법은, 결국 이곳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서원상 대표는 대도시에서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지방에서 사는 것도 삶의 한 가지 방법"이라고 서 대표는 말하고, 몸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