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 기자로부터 끊임없이 들었던 말은 '기사를 쉽게 써라'였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사를 쉽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고 끊임없이 교육받았다. 지금도 이 기사 작성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30여 년 노력에도 문맥도 파악하지 못하고 꼬투리만 잡는 댓글이 기사에 여전히 달린다. 그럴 때마다 일부 독자의 문해력을 탓하기 보다 나의 빈곤한 전달력을 자책해왔다.
최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른바 '국민배당금' SNS 글이 논란이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보수 야당이 색깔론 공세를 펼치면서다. 김 실장의 글 전체를 읽어 보면 그의 전달력 보다는 독자의 문해력에 더 큰 문제가 있는 듯하다.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글은 최근 초호황을 맞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윤의 배경과 한국 산업 경제 구조의 질적인 변화, 그리고 그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재설계와 재정 운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김 실장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초과이윤이 과거와 달리 지속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까지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적으로 오갔지만 앞으로는 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해 이윤을 계속 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인프라'로 기능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마치 전기나 통신처럼 말이다.
김 실장은 또 AI 시대에 유독 한국에 초과이윤이 몰리는 이유로 한국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풀스택(full stack·전후방 산업 모두를 아우르는) 제조 역량을 갖고 있는 점을 꼽았다. 메모리 반도체 뿐만 아니라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정밀 제조, 전력 장비, 산업 자동화 등 AI가 인프라로 고도화되는 데에 필요한 요소를 거의 대부분 만들어 낼 수 있는 독보적 국가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한국 경제의 근본 성격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기 변동을 타는 순환형 수출 경제 구조에서 기술독점적 경제로 전환돼 초과이윤이 지속적으로 창출될 수 있다고 재차 설명했다. '인프라'로서의 AI 시대가 도래하고 한국의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 이에 걸맞게 국가의 거시경제 변수도 재설계해야 한다고 김 실장은 밝혔다. 그러면서 그 해법으로 창업과 문화 산업 지원, 저출생 고령화 극복을 위한 글로벌 인재 이민 활성화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AI 초과이윤이 K자형 불균등 성장을 완화하는데도 사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나라 전반에 걸친 정책 재설계와 집행에 AI 초과이윤을 써야 한다는게 김 실장의 결론이다. 그는 이 '원칙', 즉 AI 시대 구조적 초과이윤을 사회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을 '국민배당금'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초과 '세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배당금'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이 SNS에 글을 올린 다음날 국내 주가가 공교롭게도 하락하자 국민의힘이 공세에 나섰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본시장 불안을 초래한 김 실장을 경질하라'고 주장했다. 송 원내대표는 '기업의 초과이윤을 사회적 환수 대상으로 바라본 반시장적 인식'이라고 김 실장을 몰아붙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한술 더 떠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을 국가가 가져가서 나눠준다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 배급경제'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김 실장의 구상을 '황금알 거위 튀겨먹기'라고 비아냥댔다.
이들은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가가 강제로 빼앗아 국민들에게 현금으로 나눠주는 개별 정책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앞서 짚었듯이 김 실장의 '국민배당금' 생각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를 그 재원으로 하고 있다. 또한 그 형식도 '현금 분배'라는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반의 균형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 야당의 지도부는 거두절미하고 '국가의 기업 이윤 강제 환수'와 '포퓰리즘적 분배'로 몰아붙이고 있다.
장 대표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모두 붇고 중앙부처 공무원과 판사까지 했다. 송 원내대표 역시 행시를 거쳐 기획재정부 차관까지 지냈다. 이 대표는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세 사람 모두 김 실장 글의 주제와 문맥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얼토당토 않는 색깔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고의적 오독수준을 넘어선다.
김용범 실장은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국민배당금' 등 정치 선동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용어들을 순진하게 사용했다는 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