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대, 다른 지원…20살 자립청년들 출발선 왜 제각각

아동복지시설 출신 가영씨, 월 180만원 지원받아
청소년쉼터 출신 준성씨, 정부 지원 사실상 없어
보건복지부·성평등부로 나뉜 시설과 지원체계
시설입소는 랜덤…쉼터 출신 청년 현황도 파악 안 돼
위기경험·수요자 중심으로 자립지원체계 개편해야

22살 자립준비청년 가영(가명)씨와 준성(가명)씨는 출신 시설이 달라 받는 자립지원 수준도 다르다. AI 생성 이미지

#자립준비청년 가영(22·가명)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집을 나왔다.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언과 체벌, 어머니의 방임 속에서 자랐다. 학교 담임교사의 신고로 아동학대가 접수되면서 분리 조치가 이뤄졌다. 시골에서 자란 가영씨가 처음 보내진 곳은 주거지 근처 청소년 쉼터였다. 2차 피해 우려로 제대로 된 외출도 불가능했던 상황. 가영씨는 몇 달 뒤 다른 지역의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시설로 옮겨졌다.

그룹홈 생활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또래 간 갈등도 있었고 적응도 쉽지 않았지만, 원가정을 벗어나 계속 지낼 곳이 있다는 게 좋았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퇴소한 가영씨는 시에서 자립정착금 천만 원을 받았다. 이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해 자취를 시작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줘서 대학도 진학했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지금 가영씨는 자립수당, 기초생활수급비, 주거 급여 등을 포함해 월에 170~180만 원 수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스무 살 무렵 방황하던 시기도 있었다.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정부의 자립 지원이 5년까지라 그 전에 꼭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 자립전담기관에서 연계된 각종 지원 프로그램과 정보를 접하면서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가영씨는 지금 휴학을 신청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 준성(22·가명)씨의 출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격이 큰 편에 속했지만 아버지 앞에만 서면 위축됐다. 중학생 때는 아버지의 폭행으로 머리를 다쳐 응급실까지 실려 가기도 했다. 그러나 학업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준성씨는 원가정에서 버텼다. 그러다 밤 시간대 집에서 쫓겨난 준성씨를 이웃 주민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고, 준성씨는 청소년 쉼터로 들어가게 됐다.

문제는 이후였다. 쉼터에서 다른 시설로 연계는 번번이 무산됐다. 자리가 부족한 데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시설 이관 자체가 어려웠다. 당시 쉼터 보호기간은 최대 9개월이었기 때문에 준성씨는 이후 거리 생활을 해야만 했다. 친구 집과 독서실, 여관을 전전했다. 그럼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붙었지만, 등록금이 없던 준성씨는 진학을 포기하고 결국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대학을 선택해야 했다.

현재 준성씨가 정부로부터 받는 자립 지원은 사실상 없다. 스무 살 이후 받은 대출과 기숙사비를 갚으려고 쿠팡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LH 주거 지원을 일부 받고 있긴 하지만 생활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간 재단의 장학 사업을 따로 신청해 선정됐고 대출을 갚는 데 썼다. 준성씨는 지금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나 아동학대를 경험하고 '자립준비청년'이 됐지만, 두 사람의 자립은 다른 방향으로 갈렸다. 이처럼 지원의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출신 시설 때문이다. 가영씨는 아동복지시설, 준성씨는 청소년복지시설에서 각각 퇴소했다.

출발선 가른 시설, 거리로 내몰린 청년

AI 생성 이미지

가영씨는 퇴소 이후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기초생활수급비, 공공임대주택 연계까지 각종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준성씨는 이러한 지원 체계에 포함되지 못하고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있는 기회의 폭도 좁아졌다.

원인은 소관 부처와 적용 법률이 달라서다. 보육원, 그룹홈 등 아동복지시설은 보건복지부가, 청소년쉼터 등은 성평등가족부가 각각 관할하면서 지원 체계가 분리돼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복지시설 출신 청년은 '보호종료아동'으로 불리며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 기초생활보장제도, 공공임대주택 지원 등이 사전에 '패키지'로 설계된다. 지자체 단위에서 한 해 몇 명이 시설에서 퇴소해 자립하는지 명단이 관리되고 예산도 미리 반영되는 구조다.

반면 청소년쉼터 등 성평등가족부 산하 시설을 거친 청년은 이른바 '가정밖청소년'으로 별도 관리된다. 이 경우 자립정착금이나 국가장학금 등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의료비와 심리 치료 지원 등 지원 대상에도 빠져 있다. 자립지원수당 역시 최근 3년 내 2년 이상 보호받아야 지급되는데, 쉼터 특성상 단기 보호 중심으로 운영돼 입·퇴소가 잦고 쉼터 보호 기간도 불규칙적이라 해당 기간을 채우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준성씨 역시 총 보호기간이 2년에 못 미쳐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시설 입소를 당사자가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정을 나온 청소년이 어떤 시설로 입소할지는 지역 여건과 당시 시설 정원, 담당자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상 '랜덤'에 가까운 구조가 이후 수년간의 지원 격차로 이어지는 셈이다. 특히 비수도권은 시설 자체가 부족해 선택지가 더 제한적이다. 준성씨는 "당시에는 내가 당장 머물 곳, 보호받을 수 있는 곳에 가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어떤 시설에 어떤 지원이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청소년복지시설 출신 청소년 당사자 단체 브릿지유스의 정윤서 대표는 "과거에는 쉼터가 단기 보호시설 성격이 강했지만, 현재는 중장기 보호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제도 안에 편입되지 않아 쉼터 퇴소 청년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격차는 '보장시설' 여부에서도 발생한다. 보장시설은 주거가 없고 생계 지원이 필요한 기초생활수급자를 관리하도록 만든 사회복지시설로, 장애인거주시설·노인요양시설 등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아동복지시설은 보장시설로 분류돼 입소 단계에서 가구 분리가 인정된다. 이에 따라 개인 단위로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부여된다. 반면 청소년쉼터는 보장시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구 분리가 인정되지 않으면 부모 소득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어도 생계급여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준성씨는 "가구 분리를 하고 싶어도 30세 미만은 소득 기준을 충족해야 인정된다"며 "이런 제한 때문에 기본적인 생계 지원조차 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해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성평등가족부 현판 설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부처별로 나뉘어 있던 자립준비청년 지원을 유사한 수준으로 맞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자립정착금과 국가장학금 등 일부 핵심 지원을 시설 유형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하는 게 골자다.

다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현재 자립지원 전달체계가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 만큼, 자립준비청년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할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지원 수준보다 관리 방식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동복지시설 출신 청년은 퇴소 이전부터 지원 대상자로 관리돼 패키지 형태로 지원이 연계되지만, 쉼터 출신 청년은 이같은 행정 관리망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제도가 존재해도 대상자를 포착하지 못해 지원 누락이 반복되는 구조다.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 브릿지유스 정윤서 대표는 "시설에 머무는 단계부터 지원 수준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며 "보건복지부 시설은 보장시설로 분류돼 개인 단위 지원이 가능하지만, 쉼터는 그렇지 않아 기본적인 생활 여건부터 격차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 자립지원시설 퇴소 청년의 자립생활 실태 조사 결과, 청소년시설을 퇴소한 청년이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한 청년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고, 플랫폼 노동 경험이 많으며, 채무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현행 보호체계를 주무부처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사자가 어떤 위기를 겪었고 현재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기준으로 개별화된 지원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자립지원 전달체계는 보건복지부의 자립지원전담기관 17개소와 성평등가족부의 청소년자립지원관 13개소로 이원화돼 있어 지역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지원 종류와 수준에도 차이가 난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서복경 민간 부위원장은 "중앙정부나 부처가 어디냐는 것은 행정의 문제일 뿐, 당사자에게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냐의 문제"라며 "위기 상황에 놓인 청년을 빠짐없이 포착하고,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윤서 대표는 "자립 지원 격차는 단순한 생활의 어려움을 넘어 학업 중단, 취업 준비 지연 등 장기적인 삶의 궤적에까지 영향을 준다"며 "보호는 받았지만, 보호로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이 되는 청년들을 국가가 살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는 '보호종료아동'과 '가정밖청소년'으로 나뉘어 있는 개념을 통합하고 자립준비청년 개념을 재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할 부처와 관계없이 시설을 퇴소하고 성인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지원이 필요한 모든 취약 청년을 포괄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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