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파업의 중대 기로에 놓인 가운데, 정부는 일각의 '긴급조정권' 발동 주장에는 선을 그은 채 사후조정 회의 재개와 물밑 설득 등을 통해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 역시 강제적 개입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자율 교섭을 통한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5일 정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전날 삼성전자 노사 양측에 오는 16일 사후조정 회의를 다시 열자고 공식 요청했다.
사후조정 회의는 노조가 파업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노동위원회가 노사 양측의 동의를 얻어 다시 한번 분쟁 해결을 중재하는 절차다. 노사 어느 한쪽이라도 요청해야 하지만, 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사후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 당사자들에게 권유해 동의를 얻은 뒤 개시할 수도 있다.
앞서 삼성전자 노사는 고용노동부 제안으로 지난 11일부터 이틀간 첫 사후조정 회의를 진행했지만, 마라톤 교섭 끝에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됐다.
중노위는 "노사 간 입장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시 한번 진정성 있는 대화와 실질적인 교섭의 자리로 2차 사후조정 회의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삼성전자 사측 역시 노조에 공문을 보내 "회사는 노사가 직접 대화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며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
공은 노조로 넘어갔지만, 노조는 '최후통첩'을 날리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는 사측에 보낸 회신 공문에서 "진심으로 노사 간 대화를 원한다면 성과급 투명화와 상한 폐지, 제도화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기 바란다"며 "사측의 확실한 대화 의지가 확인될 경우 대화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는 이날 오전 10시까지 대표이사가 직접 답변하라고 시한을 못 박으며 "변화가 없을 경우 적법한 쟁의행위인 파업으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쟁점에 대한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교섭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셈이다. 노조가 대화의 여지 자체를 닫은 것은 아니지만, 방점이 조건 수용 여부에 찍혀 있어 16일 대화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도 대화 국면을 열기 위한 물밑 설득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강유정 수석대변인은 지난 13일 브리핑에서 일각의 긴급조정권 발동 주장에 대해 "아직 노사가 대화로 문제를 풀 시간이 남아 있다"며 선을 그었다.
대화 국면을 열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만큼 긴급조정권은 정부 내에서 본격적으로 검토되지 않는 상태다. 노동부 관계자는 "실무 차원에서 제도에 대한 검토는 있을 수 있지만, 노동계 반발도 있는 만큼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긴급조정권은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노동부 장관이 직권으로 30일간 파업을 금지하는 제도다. 1969년 이후 단 네 차례만 발동됐을 정도로 극히 예외적인 조치로, 국제노동기구(ILO)도 폐지를 권고할 만큼 자율적인 노사 관계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억누르려는 일부의 갑작스러운 긴급조정권 여론몰이가 대화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상 보장된 쟁의행위를 국가가 경제 논리로 원천 봉쇄할 경우 정부가 기울어진 심판을 자처하는 꼴이 돼 노사 관계 파국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 정흥준 경영학과 교수는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경우 앞으로 정부가 노사 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노정 관계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 상황이 긴급조정권 발동의 명확한 요건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이라며 "정무적 관점에서도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해 파업에 이른다면 그에 대한 비판과 책임은 일차적으로 노사가 져야 하지만, 정부가 개입해 파업을 막아설 경우 그 무거운 책임의 화살은 오롯이 정부를 향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전날 성명을 내고 "단지 산업 규모가 크고 국가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며 "정부는 노동권 제한 가능성을 둘러싼 무책임한 여론몰이를 방치하지 말고, 노사 자율교섭 원칙에 따라 원만한 교섭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