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민원인과 성관계' 군수 파면되던 날, 유권자들 "수치스럽다" ②[르포]'부자 1번지' 의령 군수 흑역사…유권자들 "우리시대는 끝" ③"초등 동창까지 동원해 청탁"…집무실 CCTV 단 시장님 |
"단체장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저는 시장실에 CCTV를 달았습니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들어오는지, 제가 무엇을 하는지 밖에서 다 볼 수 있게 말이죠."
경기도 용인에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있다. 현직인 이상일 용인시장을 제외한 민선 이후 역대 시장 7명 중 6명이 직무와 관련된 뇌물수수, 인사 비리, 개발 비리로 기소된 이력이 있다. 이 중 5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용인시장 자리에만 오르면 쇠고랑을 찬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닐 정도다.
지난 11일,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직무 관련 부패 혐의로 기소된 이력이 없는 전직 시장을 만났다. 민선 7기 백군기(76) 전 용인시장이다.
단체장의 자리엔 어떤 유혹이 오는가
용인 에버라인 경전철을 타고 시청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두 가지 풍경이 교차한다. 탄천을 따라 이어지는 초록빛 수풀과 강가의 하얀 꽃. 그 너머로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끝없이 펼쳐진다. 인구 약 110만 명의 용인에서는 개발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개발의 이면에는 단체장을 향한 끊임없는 유혹이 존재해 왔다.
단체장의 권한은 크다. 인사권, 예산권, 개발 인허가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다. 특히 용인처럼 개발 사업이 끊이지 않는 도시에서 인허가권이 갖는 무게는 남다르다.
백 전 시장은 부패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로 세대수 조작이다. 아파트 단지 개발에는 세대수 기준이 있다. 특정 세대 이상이면 광역 교통망을 갖춰야 허가가 난다. 왕복 4차선 도로를 새로 놓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준치를 딱 한 세대만 밑돌면 그 의무가 통째로 사라진다.
그는 "5천 세대 이상이 되면 광역 교통망을 갖춰야 개발 계획이 승인된다. 그런데 4999세대로 딱 한 세대만 줄여주면 수십억 원의 예산이 절감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걸 꿀꺽 삼키고 해주면, 그건 곧 정치인으로서는 죽는 것"이라며 규정 위반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유혹의 실체를 폭로했다.
임야나 전답처럼 건축이 불가능한 땅을 건축 가능한 대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공무원의 재량이 개입되면서 비리가 발생한다. 목적이 변경되는 순간 땅값이 수배로 뛰는데, 개발업자 입장에서 단체장의 결재 한 줄이 수십억 원의 차이를 만든다.
세 번째는 경사도 기준이다. 용인시 도시계획 조례는 경사도 15도를 기준으로 임야의 개발 가능 여부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상향 조정해 달라는 압박이 무지하게 온다는 것이다. 백 전 시장은 "이 엄청난 이익을 위해 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백 전 시장도 관련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 경사도 기준 완화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땅의 이해관계자가 그의 초등학교 동창을 수소문해 접촉한 뒤, 친구를 내세운 방식이었다. 직접적인 청탁이 아닌 오랜 인연과 친분을 타고 스며든 청탁이다.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초등학교 친구까지 동원해 접근했다"며 "그 친구에게 너 지금 내가 감옥 가기를 바라냐? 여기에다 투자하거나 이런 요청 하지 마라. 이렇게 강하게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백 전 시장은 단체장들이 조그만 욕심에 원칙을 저버리면서 비리에 연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원인들이 무수하게 시험한다. 밥을 먹자, 술을 먹자. 그런 것에 끌려가면 그게 비리의 고리가 된다"며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체장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많으면, 단체장도 사람인 이상 결국 넘어가게 되어있다"고 토로했다.
그에게 용인에서 유독 비리가 반복된 이유를 묻자, "일차적으로는 단체장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지 못했던 것"이라면서도 "개발이 엄청나게 이루어지고 땅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그런 것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지목했다.
그는 어떻게 버텼나
백 전 시장은 개인의 도덕성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부패를 방지할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시장실에 CCTV를 설치해 모든 면담과 업무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자기 행동을 떳떳하게 만드는 수단이었다. 내부 감사관 대신 감사원에서 외부 감사관을 파견받아 조직 내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는 "감사원 파견 감사관이 왔다는 그 자체가 실무자들에게는 엄청난 억제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인사 청탁이 유흥업소나 술자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관행을 끊기 위해 인사과장에는 여성을 임명했다. 비서실장은 선거 측근이 아닌, 현장에서 가장 오래 일한 동장 등을 데려왔다.
외부 식사 기준은 1만 5천 원으로 정했다. 그는 "단품 갈비탕이나 삼계탕. 누가 봐도 이해될 수 있는 자리"를 원칙으로 삼았다.
백 전 시장은 모든 단체장의 행위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시장 노릇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유권자에게…"후보가 살아온 길을 볼 것"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백 전 시장은 유권자들에게 부패 정치를 예방하기 위한 당부도 남겼다.
그는 "투표 전에는 후보가 살아온 길을 한번 쭉 들여다보셔야 한다"며 "저 사람은 진솔했나,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신뢰를 줬나. 그 인생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킬 수 없는 과장된 공약은 그 자체로 거짓말이 되고, 그 공약을 억지로 실행하려는 과정에서 또 다른 비리의 싹이 튼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진솔하게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뽑는 것이 지역의 불명예를 막는 유일한 길"이라며 "교과서적인 것이 공직자의 본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