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뽀삿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장성규 선교사가 9일 울산CBS '우리 함께 찬양을–나의 최애찬양'에 출연해 음악과 신앙, 그리고 캄보디아 아이들을 향한 선교 이야기를 전했다.
장 선교사는 현재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시각장애를 가진 선교사로, 캄보디아 뽀삿 지역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선교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밴드부 활동을 계기로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남아 있던 악기가 클라리넷이었고, 우연히 잡은 그 악기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는 설명이다.
장 선교사는 "악기를 시작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장애인 선교단체에서 연주 요청을 받았는데, 그때 '당신이 악기를 들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 순간의 감동이 지금까지 음악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회상했다.
시각장애로 인해 음악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점자 악보나 보조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귀로 듣고 익혀야 했다.
그는 "누군가 제대로 가르쳐준 적도 거의 없었고, 혼자 들으며 하나씩 익혔다"며 "지금처럼 유튜브가 있었다면 훨씬 쉽게 배웠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후 그는 독일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음악의 길을 이어갔다.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독일로 향했고, 라디오를 들으며 언어를 익혔다고 설명했다. 또 수 차례 토플 시험에 도전한 끝에 미국 유학의 길도 열렸다.
장 선교사는 "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했다. 그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는 교회 공동체의 사랑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회 관현악단에서 연주하게 됐고, 성도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가족처럼 품어줬다는 것이다.
그는 "그전까지는 비장애인들과 깊게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캄보디아 선교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시작됐다. 베트남에서 음악 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나를 정말 필요로 하는 나라로 보내달라"고 기도했고, 이후 캄보디아 뽀삿 지역으로 향하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리코더를 가르치는 음악 수업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삶 자체를 품게 됐다.
장 선교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함께 밥을 먹고 이름을 불러주고 삶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후원금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들과 식사를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 달 후원금이 30만 원이던 시절에도 밥값으로 60만 원 이상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선샤인교회의 시작도 그렇게 이어졌다. 연습 공간이 없어 게스트하우스와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그는 기도 끝에 교회를 세우게 됐다.
첫 예배에는 80명이 모였지만, 다음 주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아이들에게 라면을 사주며 다시 초청했고, 8명으로 시작된 예배는 지금 많게는 150명까지 모이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장 선교사는 선교 사역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네가 하는 선교는 틀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기도 제목은 교회 건축 마무리와 아이들의 신앙 성장, 그리고 선샤인교회가 지역사회 안에서 쉼과 위로의 공동체로 세워지는 것이다.
장 선교사는 자신의 최애 찬양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를 소개하며 "좁은 길이고 힘든 길일지라도 아이들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끝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울산CBS '우리 함께 찬양을–나의 최애 찬양'은 FM 100.3MHz를 통해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5분 방송되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