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금품을 수수한 뒤 유리한 판결을 내린 혐의를 받는 현직 부장판사를 재판에 넘겼다. 공수처 출범 이후 현직 법관을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수처 수사2부(김수환 부장검사)는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청탁금지법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A부장판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B변호사는 뇌물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수처에 따르면 A부장판사는 지난 2023년 5월 3일부터 이듬해 9월 4일까지 B변호사로부터 상가 임차료와 공사 비용 등 약 3300만 원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는다. 상가는 A부장판사 배우자의 바이올린 교습 목적 등으로 사용됐고, 방음 공사 비용 등을 B변호사가 대신 지불했다는 게 공수처 설명이다.
이들은 공사 비용 대납 사실을 숨기기 위해 상가에 설치한 그랜드 피아노 한 대를 공사 비용으로 갈음해 양도한다는 취지의 합의해제 서면을 허위로 작성한 혐의도 적용됐다.
또 B변호사는 지난 2024년 9월 4일 현금 300만 원이 든 견과류 선물 상자를 A부장판사에게 건넨 혐의가 있다.
공수처 수사 결과 이들은 고등학교 동문으로 A부장판사가 전주지법에 근무할 당시 B변호사는 해당 지역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였다. 공수처는 A부장판사가 해당 지역에 부임한 이후 이들이 190여 차례에 걸쳐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저녁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봤다.
특히 공수처는 접견 녹취록 등을 분석해 A부장판사와 B변호사가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해당 지역 교도소에 퍼진 정황을 확인했다. 이 같은 소문을 들은 의뢰인들이 B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을 선임했고, 그는 A부장판사와의 친분을 이용했다는 게 공수처 판단이다.
공수처가 실제 재판 결과를 분석해보니 A부장판사는 B변호사 소속 법무법인이 수임한 항소심 사건 21건 중 17건에 대해 유리하게 형량을 감경했다. B변호사가 보석에 따른 성공 보수 지급을 계약에 추가한 뒤 A부장판사가 직권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등의 사례도 있었다는 게 공수처 조사 결과다.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전북경찰청에 처음 고발장이 접수됐다. 공수처는 같은 해 5월 경찰에 사건 이첩 요청권을 행사해 넘겨받은 뒤 전주지법과 B변호사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는 지난 3월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상가 무상 이용에 따른 재산상 이익 공여 부분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 사건은 지역 법원 부장판사와 관내 변호사 간 유착에 따른 토착 비리 사건"이라며 "현직 부장판사가 재판 진행 중인 담당 사건의 변호인으로부터 재판을 매개로 뇌물을 수수한 사실을 밝히고 기소에 이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공수처가 현직 법관을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공수처는 지금까지 전·현직 검사와 경무관 등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