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앞. 검은색 차량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이날 오후 2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려는 국회의원들의 행렬이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정차했다가 떠나는 차량들의 번호판 끝자리는 0, 2, 4, 6, 8. 그러나 일부 차량들의 번호판 끝자리는 분명 홀수였다.
이날은 차량 2부제에 따라 짝수 차량만 운행해야 하는데 홀수로 끝나는 위반 차량에서 내린 의원들은 태연히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 멈춰선 차량 34대 중 7대가 차량 번호판 끝번호가 홀수였다.
중동 전쟁의 장기화로 국제 유가 상승과 에너지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시행된 차량 2부제가 어쩐지 국회에서는 관대하게 운영되는 모습이다.
주차장에 위반 차량 버젓이…'30㎞ 예외'에 꼼수 판치나
CBS노컷뉴스 취재진은 최근 홀수날과 짝수날 각각 국회의원회관과 국회의사당 등의 주차장을 찾아 국회의 차량 2부제 운행 실태를 살펴봤다.
취재 결과, 홀수로 끝나는 날 의원회관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약 30대 중 절반 가량의 번호판 끝 번호가 짝수인 것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14대의 차량 끝 번호가 홀수였다.
짝수날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의원주차구역에 세워진 약 30대의 차량 중 16대의 차량 끝번호가 홀수였다. 물론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들이 전날이나 다른 날에 운행된 뒤 줄곧 주차됐을 가능성은 있다.
취재진이 확인한 차량 전체를 2부제 위반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국회는 전기·수소차와 임산부·장애인 차량 등을 2부제 적용 제외 대상으로 두고 있는데, 취재진이 확인한 이틀 간의 위반 차량 총 30대 중 약 7대도 예외 대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예외 조항이 2부제를 회피하는 교묘한 사각지대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국회는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주소지가 국회로부터 30㎞ 이상 떨어진 경우 2부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서울과 수도권 일부에 주소를 둔 의원을 제외한 다수의 의원들이 규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 이같은 예외 조항은 다주택 국회의원들에게 악용될 우려도 있다. CBS노컷뉴스가 지난 2월 국회의원 250명의 주택을 전수 조사한 결과 총 84명의 의원이 지역구가 아닌 서울·수도권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고, 34명의 의원이 지역구와 서울·수도권 모두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관련 기사: 내가 뽑은 지역구 국회의원, 집은 어디 샀을까)
또, 회기 중에는 상당수가 서울에 거처를 두고 머무는 현실을 감안하면 '30km 예외 조항'은 국회 차량 2부제를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단속을 피하려 주차 카드를 떼어낸 뒤 '민원인 차량'으로 위장하는 꼼수까지 동원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회 구성원이 5천명 정도 되기 때문에 누구의 차량인지 현실적인 파악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들만 노력하자는 정책인가"…1만1천개 기관 근무자들 한숨
고유가 시대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자 먼 길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국회 차량 2부제 실태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1만1천개의 공공기관에 승용차 2부제 시행을 지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해당 조항을 엄격히 지키고 있다.
서울의 한 공무원은 "여러 번 지키지 않으면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대중교통으로 왕복 2시간 30분이 넘게 다니고 있다"며 "출퇴근길에 그날 하루의 체력을 다 쓰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서울과 다르게 지방은 버스도 없고 걸어가려면 5㎞ 넘게 걸어야 하는데 너무 배려가 없는 정책인 것 같다"며 "직장에서는 엄격히 지키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며 한탄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에너지를 아끼자면서 모범이 돼야 할 국회의원들은 차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과 그게 관리도 안되고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결국 서민들만 노력하라는 뜻은 아니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