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단순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소설집 '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이 물음에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답한다. 기사나 통계가 아닌 '이야기'를 통해서다.
이 책은 성해나, 김기태, 박연준, 하성란, 윤성희 등 동시대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19명이 참여한 앤솔로지다. 문화일보 연재 기획 '소설, 한국을 말하다'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집은, 인공지능(AI), 계엄, 입시, 전세 사기, 노벨문학상 등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오늘의 현실을 촘촘하게 포착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속도'다. 이 책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챗GPT를 활용해 감정과 경험을 대신하는 인간의 모습, '갓생'을 연출하며 스스로를 소비하는 삶, 배달 앱 지도 위 빨간 점으로 연결되는 관계의 온기까지, 지금 우리의 일상이 소설 속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1부는 개인의 삶에 집중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인물, 휴식조차 죄처럼 느끼는 현대인의 불안, AI가 감정과 돌봄까지 대신하는 미래 등이 담긴다. 특히 하성란의 '발목'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문장 속에서 인간의 감각이 점점 희미해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2부는 가족이라는 단위로 시선을 넓힌다. '7세고시'로 상징되는 교육 경쟁, 입시를 둘러싼 부모의 불안, 불임과 양육 문제 등 한국 사회의 가장 현실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족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3부에서는 사회 전체로 시야가 확장된다. 계엄과 정치 갈등, 전세 사기, 젠더 이슈 등 최근 한국 사회를 흔든 사건과 구조적 문제들이 소설의 언어로 재구성된다. 정용준의 '일어나지 않은 일'은 '망설임'이라는 감정을 통해 폭력의 중단을 이야기하며, 현실을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이 작품집이 흥미로운 이유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책은 "결코 휘발되지 않을 뉴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 소설집은 사건을 전달하는 대신, 그 사건이 남긴 감정과 흔적을 기록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의 시대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시 묻는 셈이다.
성해나·김기태·박연준 외 지음 | 은행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