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양대 노총에 이른바 '연좌제' 요소를 제외하는 등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 개편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며 제도 자체의 전면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20일 노동계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최근 노정협의체 실무협의회 과정에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회계 공시 개편안을 제안했다.
尹 '노동개혁 1호' 꼬리표 붙은 노조 회계 공시…세액공제 볼모에 '연좌제' 논란까지
노정협의체 실무협의회는 지난 2월 발족해 매월 한 차례씩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발족 초기부터 노동계는 노조 회계 공시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폐기를 의제로 제시해 왔다.
문제의 '노동조합 회계 공시'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23년 9월,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명목으로 도입됐다. 윤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 중 노동개혁 1호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합비를 내지 않는 외부인에게 노조가 회계 내역을 공개할 법적 의무는 없다. 노조는 제도 도입 이전에도 법에 따라 반년마다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해 왔다. 게다가 조합원이 지도부를 선거로 선출하는 양대 노총은 조직 내부의 다양한 정파가 '야당' 역할을 하며 집행부의 회계 내역을 검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회계 공시를 밀어붙인 배경에는 '노조의 돈 씀씀이가 불투명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고, 나아가 노조 탄압의 빌미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다.
결국 양대 노총은 제도에 반대하면서도 조합원이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피해를 우려해 공시에 참여해 왔다. 다만 금속노조와 금속노련 등 일부 산별노조는 여전히 회계 공시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 "연좌제 폐지·자율 공시" 제안에도…노동계 "꼼수 말고 폐지가 정답"
이번에 정부는 공시 대상은 유지하되 상급단체와 산하 노조 간 연좌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체 공시 의무가 없는 1천 명 미만 산하 노조는 상급단체나 연맹이 공시하지 않더라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 회계 공시 시스템이 아닌 노조 자체 시스템이나 총연합단체 시스템을 통해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방식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애초 사실상 '노조 길들이기' 수단으로 강행된 제도를 이재명 정부에서도 유지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양대 노총 위원장들은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노조 회계 공시 제도 폐지를 요구한 바 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은 정부 제안에 대해 "여러 노정 대화 안건 중 하나로 이제 논의를 시작한 단계여서 아직 구체적인 협의가 이뤄진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애초 회계를 공시해도 정부가 의도한 노조의 투명한 운영 여부를 확인할 실효성도 없는 허술한 제도"라며 "부당한 제도인 만큼 제도가 없던 상태로 원복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노조 입장에는 변화가 없어 당장 논의 진전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노총 역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 전호일 대변인은 "지난 16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정부 제안 내용 등 협의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며 "연좌제만 폐지해서는 안 되고 회계 공시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조 회계 공시는 매년 4월 30일까지 공시하는 것이 원칙이며, 부득이한 사유가 있거나 회계연도 종료일이 12월 말이 아닌 경우 9월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번 개편안이 적용되려면 노조법·소득세법 등 관련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노동계가 입장을 바꿔 논의에 속도를 내더라도 개정 절차 등을 고려하면 실제 개정 내용은 올해가 아닌 내년 회계 공시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