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둥 색이 달랐던 이유는?" 근현대史 질곡 담긴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축성 100주년 건축포럼

서울 중구 언덕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축성 100주년을 맞았다. 최창민 기자

"성당을 건축한 딕슨은 우아한 감각에 시각과 청각에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에 동양적 양식이 가미된 건축은 서로 형제와 같다고 했다."
 
교회 건축사를 연구한 이정구 신부(전 성공회대 총장)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주교좌성당 대성전에서 열린 '서울주교좌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건축포럼'에서 서울주교좌성당 설계를 맡은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Arthur S. Dixon, 1856-1931)의 건축 철학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정구 신부는 "외형은 석조와 벽돌 조적조로 구축한 네오-로마네스크 풍이고 내부 제단 부분의 모자이크는 비잔틴 양식을 현대화했다"고 밝혔다.

서울주교좌성당은 다소 딱딱하고 투박한 고딕 양식이 교회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당시의 건축 양식 풍조에 따라 주변과 조화를 강조하는 로마네스크풍으로 지어져 동양적인 미학도 더해질 수 있었다.

이정구 전 성공회대 총장이 서울주교좌성당의 건축 양식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최창민 기자

"선교적 이유" 고딕 양식에서 로마네스크풍으로


이정구 신부는 "건축 당시 영국은 선교적 이유로 네오고딕 양식을 접고 비잔틴-로마네스크 양식이 새롭게 유행하던 시기였다"며 "영국 선교사 트롤로프 주교는 네오고딕 풍의 건축을 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설계를 맡은 딕슨은 정동 언덕에 우아하고 온화한 로마네스크 풍으로 지을 것을 설득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주교좌성당이 애초의 설계대로 완공된 건 비교적 최근인 1996년이다. 1922년 착공해 1926년 미완성인채로 봉헌됐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영국성공회의 지원이 중단됐고 70년이 지나서야 원래의 설계대로 건축이 마무리됐다. 그사이 애초 건축 설계 도면이 실종됐고 김원 건축가(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가 영국 현지에서 아더 딕슨의 건축 활동기록을 찾아내 완공할 수 있었다.

김원 건축가는 "서울주교좌성당은 원래 설계에서 축소한 미완의 상태였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영국에서 지원도 끊긴 상태였다"며 "현대에 와서 완성을 하려고 했지만 원래 도면을 찾지 못하다 영국 버밍엄에서 어렵게 설계 도면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성당 안을 보면 앞쪽 3개의 돌기둥은 과거에, 뒤쪽 4개의 돌기둥은 1996년에 완공한 것"이라며 "2015년 8월 성당을 가로막고 있던 서울 국세청 남대문 별관을 헐고 시민광장과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주교좌성당은 영국의 건축가 아서 딕슨의 애초 설계대로 지어지지 못했다가 70년이 지난 1996년에 와서 완공될 수 있었다. 최창민 기자

"압축성장한 도심 속 시민과 공존하는 공간으로"


서울주교좌성당은 앞으로 성당 건축물을 넘어 시민과 호흡하도록 재구성되어야 하며 압축성장으로 인해 생겨난 한국의 윤리적 진공 상태를 채우는 공존과 포용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성당 100주년 리모델링을 맡은 이세진 건축가(아게건축사사무소 소장)는 "향후 서울주교좌성당이 지닌 문화재적 가치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건축물 유지관리를 넘어 성당을 둘러싼 외부 공간의 물리적 환경과 도시적 맥락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건축가는 또 "정동 근대역사길과 덕수궁 돌담길로 이어지는 도시 흐름을 성당 내부로 자연스럽게 유입시켜 보행성을 근대화해 도시 속 쉼터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런 접근으로 시민과 호흡하는 지속가능한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압축성장의 경로를 지나온 현대 한국은 어쩌면 하나의 윤리적 진공 상태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며 "가족 윤리의 해체, 이웃 윤리의 붕괴, 그리고 시민 윤리의 미정착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 윤리적 진공이 형성됐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이어 "공동주거는 우리가 공멸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공존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정주 인프라"라며 "차이를 포용하는 공동주거의 탄생과 정책, 나아가 일반화를 향한 긴 역사적 도정의 출발점에서 성공회와 같은 종교 공동체의 역할이 다시 요청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주교좌성당 대성전의 양쪽 기둥을 보면 1996년 보완된 네번째 기둥부터 색깔이 다소 밝은 것을 볼 수 있다. 송주열 기자

대한성공회는 서울주교좌성당 축성 100주년을 맞아 이번 건축포럼을 시작으로 오는 26일 오후 2시 30분 신앙포럼, 다음달 2일 오후 5시 축성 100주년 기념음악회 '거룩한 집이여' 등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다음달 3일 오전 11시 열리는 감사성찬례는 지난 100년간의 시간을 기리는 100번의 타종으로 시작해 축성 첫날처럼 성당의 문을 여는 의식과, 모든 세대의 신자들이 성당 안으로 한걸음씩 들어서는 순행 순으로 진행된다. 이 예식은 서울교구 역대 주교들의 공동 집전으로 이뤄진다.

같은 날 오후 3시 이어지는 기념식에서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이 선포되고, 100년 전 성당 축성 당시 신자들에게 나눠준 십자가를 바탕으로 새롭게 제작된 기념 십자가를 100년의 징표로 신도들에게 전달하는 의식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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