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천일 만에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해병대 수사단을 시작으로 경찰, 검찰, 그리고 순직해병 특별검사팀까지 이어진 긴 수사 끝에 사건은 이제 법원의 판단만을 남겨두게 됐습니다.
스무 살 군인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에 대해 뒤늦게라도 책임을 가리는 자리였지만, 법정에서 드러난 모습은 '책임 인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유가족과 생존 장병은 분명한 책임을 요구했지만, 지휘관은 형사 책임을 부인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언어가 오간 셈입니다.
바뀐 지시, 흐려진 기준…통제되지 못한 현장
사건의 출발점은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 내성천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이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만 해도 지시는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수변 끝까지만 접근하고 물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날 밤, 지휘부의 기조는 급격히 바뀌었습니다.'바둑판식 수색'을 강조하며 보다 적극적인 탐색이 요구됐고, 결국 "허리까지 들어간다"는 지시가 하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중 수색과 수변 수색의 경계는 사실상 흐려졌고, 일선 부대는 물속 진입이 허용된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입니다.
사고 당일 현장은 이미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집중호우로 수심은 일정하지 않았고, 유속은 빨랐으며, 흙과 부유물로 시야 확보도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나 안전 로프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채상병 역시 동료들과 함께 수색에 나섰다가 갑작스럽게 바닥이 꺼지면서 급류에 휩쓸렸습니다. 함께 물에 빠진 대원들 일부는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채상병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발생 약 11시간 뒤 발견됐을 때 그는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 순직해병 특검팀의 '임성근 전 사단장' 등에 대한 공소장 中 |
| 더욱이, 피고인 임성근은 2023. 7. 18. 09:00경부터 같은 날 17:00경까지 실시한 현장 지도 방문을 통해 실종자 수색 작전 구역의 하천 상황, 즉 집중호우로 하천의 수심이 깊고 유속이 매우 빠르며 토석과 흙탕물 등으로 수질이 혼탁하여 하천 바닥의 수색을 실시할 경우 발생할 위험이 높다는 사정을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 제7여단과 달리 대부분의 포병대대 해병대원들은 수색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
생존장병 "사단장 처벌돼야"…유가족 "왜 구명조끼 안입혔나"
결심공판에 앞서 생존 장병과 유가족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질문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했지만, 첫 발언이 나오기까지 길게 정적이 흘렀습니다.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생존 장병은 "지금도 잠을 못 자고 계속 기억이 난다"고 말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망설이다가 "사단장은 반드시 처벌돼야 한다"고 또렷하게 답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임 전 사단장은 고개를 숙이고 메모하던 손을 멈췄습니다.
|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
| 생존 장병: 저희는 이게 실종자 수색 대민 수색으로 알고 있었지만…오히려 안전이 아니라 체육복 해병대란 글씨가 잘보이는…그렇게 지시사항을 내린걸 알고서는… 판사: 말씀하기 많이 힘드신 것 같은데 힘들면 말씀 안하셔도 됩니다. 생존 장병: 네 판사: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하세요. 이 자리 나온 심경 느낌이라든지, 해주실 말이 없나요? 생존 장병: 관련이 있는 사람들 처벌해줬으면 좋겠고요, 또 가족 분들에게 확실하게 사과를 해줬으면 합니다. |
|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
| 고(故) 채 상병 아버지: 해병대 지휘관들한테 진짜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천 수해 현장에, 흙탕물과 급류가 흐르는 곳에 장갑차도 몇분을 못 버티고 철수하고 육군도 기상악화로 철수한 곳에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혀서 들어갔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봤을 때 이것은 살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전국적인 비상사태였고 휴대폰 문자도 얼마나 많이 왔습니까? 고(故) 채 상병 어머니: (…) 그리고 어린 병사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런 곳에 투입을 시키냐고요. 분명 구명조끼만 있었어도 충분히 저희 아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지휘관들 임성근, 박상현, 최진규, 이용민 당신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용서도 안 됩니다. |
사과할게…근데 형사처벌 받을 죄는 아니잖아?
그러나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했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면서도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상현 전 해병대 여단장과 최진규 전 포11대대장 역시 유감을 표하면서도, 당시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자신의 판단과 대응을 자책한 지휘관도 있었습니다. 당시 제7포병대대 본부 중대장이던 장수만 대위는 "어떤 이유로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며 "부하를 지키지 못한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中 피고인 최후진술 |
| 임성근 전 사단장: (…) 유가족분들께 진심을 담아서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 그럼에도 군생활 38년 명예를 걸고 지휘관으로서 직위책임, 도덕적 책임을 통감합니다만 공소사실에 나와있는 것처럼 형사처벌 받을만큼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상현 전 여단장: 고 채상병 부모님 유가족 그리고 이모 해병(생존장병)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 당시 특수한 현장 상황에서 제가 모든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장에서의 작전 활동은 결국 그 현장에서 병력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현장 지휘관들의 통제 범위 내에서 수행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한 상황을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최진규 전 포11대대장: (…) 다시 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불명확한 지시를 받은 상황에서 허가된 활동 구역을 말했을 뿐이며 상급자의 지휘 의도와 임무 설명이 어그러진 구조적인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 최종적으로는 모든 진실 밝혀질 거란 생각중입니다. 재판장께서 조서 등을 읽어서 판단해주시고 자애로운 선처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용민 전 포7대대장: (…) 하달됐다 했어도 제가 더 자세히 설명하고 현장을 확인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고 제 옆자리에 있는 장모 대위에게도 지휘관으로서 상당히 미안한 마음입니다. (…) 현장에서 강압적 지시들, 어쩔 수 없는 그릇된 군대 문화 단편적 모습 보여줬고 (…) 앞으로 우리 군대에서 이런 일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소통 통해 시스템을 갖추고 현장 목소리에 귀기울여 줄 수 있는 상급자 지휘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수만 전 제7포병대대 본부중대장: (…) 그날 사고에 대해 어떤 이유로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 지휘관으로서 부대원들의 생명을 보호할 최우선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안전 대책 확보, 그게 지휘관 존재 이유인데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
법정과 수사단계서 엇갈린 임성근의 진술
한편 특검은 이날 임 전 사단장의 진술이 수사 단계와 법정에서 여러 차례 달라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수중 수색 상황을 인지했는지 여부, 현장 투입을 재촉했는지 여부, 안전장비 필요성을 인식했는지 여부 등 주요 쟁점마다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먼저 수중 수색 관련 언론보도 인지 관련해서 임 전 사단장은 사고 당일 아침 전달받은 기사 가운데 링크 기사 제목 정도만 봤을 뿐, 기사 묶음 사진은 나중에 보려고 저장만 해두었고 직접 열어보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특검이 제시한 수사기록을 보면 임 전 사단장의 말은 이와 다릅니다.
|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
| 특검: 지난주 법정에서 증언할 때는 "기사 링크의 전체 보기를 눌러서 기사 제목 정도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기사 묶음 사진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볼 생각으로 저장했을 뿐이고, 사진 파일을 클릭해서 기사 읽어보지 않았다. 장문의 답신도 통상적인 그냥 말을 한 것이고 사진 보고 보낸 것이 아니다"며 사진에 본 사실 자체에 대해서 부인하는 최종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고 직후에 군사 경찰 조사 내용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해 영결식, 즉 7월 22일 이후에 공보실장 이기원의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된 내용을 본 것이 있는가'에 "일부 사진을 보았다"고 답변했습니다. (…) "KAAV(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 관련 기사 위주로 봤는데 괜찮게 나왔던 것을 확인을 하였다" "기사 내용상 미담 사례가 없기 때문에 언급했던 것 같기는 하다" 이러한 내용의 진술을 했었습니다. |
현장 투입을 재촉했는지 여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임 전 사단장은 법정에서는 현장 상황과 경계 통제가 미흡해 인원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라고 했을 뿐, 수색을 서두르라고 재촉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특검이 제시한 경찰 조사 기록에는 결이 다른 대목이 담겨 있습니다.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
| 특검 : 이모 중령의 "(현장에) 투입 안 시키고 뭐 하냐, 왜 빨리 작업 시작하지 않고 대기시키고 있느냐, 빨리 데리고 와, 언제 출발했냐, 작전 전개와 투입을 재촉했다"는 진술에 대해서 피고인 임성근은 경찰조사에서 "유사한 말을 했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늦은 것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한 거고 질책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라며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습니다. |
복장과 현장 지도 방식에 대한 진술도 달라진 부분으로 지적됐습니다. 임 전 사단장은 법정에서 IBS(고무보트) 운용 인력의 복장에 대해, 해병대원 식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정도의 취지였을 뿐 특정 색상의 티셔츠나 복장 미비를 직접 문제 삼은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여단장과 복장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는 취지로 진술한 내용이 확인된다고 특검은 짚었습니다.
| ▶ 2026.4.13. '채상병 순직 책임' 사건 1심 결심공판 |
| 특검: 경찰 조사 내용 보면 수색 대대장 진술한 '사단장으로부터 IBS 요원들이 빨간색 해병대 티셔츠 입고 있지 않았다'며 복장의 통일 부분을 지적 받은 내용을 보여주자 "그런 하문을 했었다, 여단장과 대화하면서 복장이 되지 않았다는 대화를 여단장과 나눴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장에서 지도나 지적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었습니다. |
"자발적으로 사죄한 사람이 없습니다"…법정을 멈춘 외침
결심공판이 끝나고 재판부가 퇴정을 준비하던 순간, 법정은 다시 멈춰 섰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만요, 재판장님"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어 최 전 포11대대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한테 와서 사죄했다고 하는데 장수만 대위를 제외하고 자발적으로 사죄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재판장이 "장모 대위 한 명뿐이냐"고 묻자, 어머니는 곧바로 "네, 저 사람 한 명이고 나머지는 특히 임성근은 계속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며 "꼭 처벌해주세요"라고 마지막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000일 만에 도달한 법정에서 유가족은 여전히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냐'고 물었고 임 전 사단장은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의 죄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달 8일 선고를 예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