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장기화의 여파가 식품·유통업계의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 포장재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두 달 새 두 배 가까이 폭등하면서 업계 전반에 초비상이 걸렸다.
원유에서 추출되는 나프타는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페트병(PET) 등의 핵심 원료로, 라면 봉지와 스낵 포장지, 음료·생수 페트병 등 대부분의 식품 포장재 생산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나프타 가격 상승은 곧 제조원가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
포장재 핵심 원료인 나프타 공급 불안이 현실화되면서 식품기업은 포장재 재고가 한두 달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식품업계는 포장재 확보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달 반 정도의 재고를 갖고 있다"며 "뾰족한 방안이 없어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한달 정도의 재고가 남아있다"며 "라면 제품의 특성상 다른 포장재로의 대체가 쉽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식품업계는 포장지 등 원자재값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원료 가격은 올려주고,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에 소비자 가격은 내려야 하는 '이중고'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포장지뿐만 아니라 물류비 등도 다 올라가 있는 상황인데 정부에서 식품 기업에는 중소기업과의 상생 차원에서 중소기업들이 납품 원가를 현실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원가를 맞춰서 올려달라 이런 요구까지 하니까 소비자 판매용 제품은 물가를 낮춰야 되고 공급용 제품은 물가를 올려야 되니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고 털어놨다.
앞서 중소벤처기업부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주최로 플라스틱 가공 업계와 수요 대·중견기업 간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중동 전쟁 여파로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플라스틱 가공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지만, 납품 단가에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협약에는 CJ제일제당, 대상, 농심, 롯데칠성음료, LG생활건강, 상미당홀딩스, 스타벅스코리아, 농협경제지주 영농자재본부 등 8개 수요 대·중견기업이 참여했다. 협약에 따라 수요 대·중견기업은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반영한 납품 대금 조정, 납품 대금 조기 지급, 원재료 수급 문제에 따른 납품 기일 연장 및 지체상금(계약된 납품 시점을 못 지킬 경우 부과되는 일종의 벌금) 면제 등에 협력하기로 했다.
유통업계에도 파장이 미치고 있다.
김밥과 빵, 과자, 물티슈 등 유통업계 자체 브랜드 상품에도 포장재 수급이 영향을 미쳐 가격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폴리프로필렌(PP)과 폴리에틸렌(PE) 등 포장재와 관련된 상품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도 매장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은 최근 매장에서 점주들이 쓰레기를 담을 때 사용하는 비닐봉지 가격을 최대 39% 인상했다.
세븐일레븐은 "국제 유가 상승 영향으로 비닐봉지를 제조하는 중소 협력사의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며 "업체 요청에 따라 부득이하게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매장에서 쓰는 비닐봉지는 반드시 본사에서 발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황 변화에 따라 가격을 다시 조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편의점 업체도 "아직 가격 인상 계획은 없지만 상황이 지속될 경우에 대비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