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이후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값이 오히려 10% 넘게 하락하며 '조정장'에 진입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 우려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장은 종전 이후 금리 인상 우려가 완화하면 금값이 장기적인 상승 흐름으로 복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주식보다 더 빠진 '안전자산' 금…인플레에 '발목'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제 금 가격은 중동전쟁 발발 직후인 지난달 2일 트로이온스당 5400달러선을 찍고 최근 4800달러선까지 밀리며 약 12% 하락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48시간 안에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인프라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한 첫 번째 '48시간 최후통첩' 직후인 지난달 23일 금값은 한때 4100달러까지 떨어지며 고점 대비 20% 넘게 급락하기도 했다. 당시 3월 셋째주 주간 하락폭은 11%로 1983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한국거래소 금 가격도 g당 25만 2530원에서 20만 7980원까지 17.6%나 하락했고, 최근 다소 반등해 22만원대를 회복했지만 고점 대비 10% 떨어진 상태다.
이 같은 금값의 낙폭은 중동전쟁 전 수준을 회복한 S&P500이나 약 5% 하락한 코스피와 비교하면, '안전자산'이라는 지위가 무색한 상황이다.
핵심 원인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 우려가 꼽힌다.
중동전쟁 이후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배럴당 67달러에서 최근 100달러에 육박하며 49%나 급등했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해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이 전년 대비 3.3% 올랐다.
이는 미국 기준금리가 5.5%로 절정이던 2024년 4월(3.4%)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금리인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쟁 전 3.92에서 한때 4.49%까지 57bp(1bp=0.01%p)나 치솟았다.
현재는 다소 진정된 4.29%를 기록해 오름폭이 37bp로 줄었지만, 여전히 기준금리를 1차례(25bp) 이상 올린 수준이다.
삼성증권 박주란 연구원은 "금의 조정폭이 유난히 가팔랐던 이유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그린란드 위기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선반영하며 기술적 과열 구간에 진입해 있었고 유가 급등과 달러 강세, 실질금리 상승 우려라는 매크로 환경에 대한 복합적 인식 변화가 급격한 포지션 청산을 유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동전쟁, 달러 패권 약화 가속도…금 매력도↑
다만 이 같은 금값 하락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동전쟁이 끝나고 물가가 안정되면 각국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금값 상승 랠리가 다시 시작될 것이란 이유에서다.중동전쟁 전까지 펼쳐진 금값 상승 랠리는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미국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면서 시작됐다.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 자산에 정치적 리스크가 있다고 보고 2025년까지 분기 당 평균 275톤의 금을 매입했다. 이는 2022년 이전 평균 125톤의 2배 이상 규모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의 집계를 보면 글로벌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은 2022년 이전 60%에서 2025년 3분기 56.9%로 하락했다. 즉 외환보유고에 쌓인 달러를 팔고 금을 채운 셈이다.
특히 이번 전쟁은 미국이 직접 개입하면서 그린란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중동 이외 지역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는 평이다. 실제 세계금협회(WGC) 조사 결과 각국 중앙은행의 95%가 올해 금 보유량 확대를 예상했다.
LS증권 홍성기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중동 산유국들의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통행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스탠스를 나타낼 경우 이미 손상된 페트로 달러의 시대는 완전히 저물고 장기적인 달러화의 대체제로 금에 대한 선호가 강화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이번 중동전쟁을 계기로 달러 패권 약화와 '안전자산 최후의 보루'로 금이 주목받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현재 금값 하락이 유동성 확보나 에너지 투자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고, 올해 말 최대 6200달러까지 상승한다고 예상했다. 골드만삭스는 중동전쟁이 단기 하방 리스크이지만, 올해 말 금값이 5400달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고유가 현상이 장기화하는 최악의 상황에선 기관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금을 매도하면서 금값이 3800달러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