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뱅크시와 사토시가 쫓기고 있습니다. 베일을 벗기려는 언론과 숨바꼭질 중이죠.
'얼굴 없는 거리 예술가' 뱅크시는 전 세계 도시의 거리, 벽, 다리 위에 도둑처럼 나타나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얼굴도, 본명도 알려지지 않은 채 활동하지만, 그의 작품은 수백억 원을 호가하죠. 경매 낙찰 순간 자신의 작품이 스스로 분쇄되는 퍼포먼스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권위와 자본의 지배에 반항하는 상징이 됐습니다.
로이터 통신은 한 달 전 뱅크시가 영국 브리스톨의 50대 초반 남성 '로빈 거닝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가 직접 서명한 경찰 기록, 출입국 데이터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름을 '데이비드 존스'로 개명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입니다.
뉴욕타임스 탐사보도팀은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18개월 추적해 영국의 암호학자인 '애덤 백'이 유력하다는 증거를 지난 8일 제시했습니다. 13만 4308건의 관련 게시물을 수집해 3만 4천명의 작성자 중 620명을 압축한 뒤 언어학적 수사 기법을 동원했습니다. 두 칸 띄어쓰기, 특정 문법 오류, 불필요한 하이픈(-) 등 독특한 습관으로 필터링한 결과입니다. 가장 정교한 언어적 지문 속에 남은 흔적을 밟은 겁니다.
뱅크시 측은 노코멘트했고, 애덤 백은 부인했습니다. 뱅크시는 과거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생활을 공개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잊고 있는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뱅크시의 본모습이 드러나면 특유의 신비주의와 반체제적 이미지가 퇴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그의 예술적 가치가 휘발될 수 있다는 거죠. 오히려 그의 신원이 명확해지면 컬렉터들의 불안을 해소해 그의 작품 가격이 반등할 것이라는 반응도 미술계는 내놓고 있습니다.
'사토시 수수께끼'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가상화폐 시장의 정당성과 향후 거버넌스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의 본질은 탈중앙화인데, 창조주가 부재해야 비로소 시스템이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사토시가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110만 개의 비트코인(약 160조원)이 움직일 경우, 시장 전체에 미칠 파장도 무시할 수 없죠.
숨을 권리와 추적당할 숙명의 논쟁입니다. 이들 보도는 신원(ID)을 확인하려는 가십성을 넘어 익명성과 투명성, 영향력과 공적 책임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뱅크시의 담론 형성 영향력, 그의 익명성이 그 자체로 강력한 브랜드이자 수익 모델이 됐다는 점을 로이터는 짚었습니다.
가면 뒤에서 거리의 폐허와 쓰레기가 예술이 됐고, 중앙은행 없는 화폐는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이름이 없었기에 형식과 내용은 온전히 주목받았죠. 오스카 와일드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면,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제 유령이 사라지면, 신화는 무너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