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고 보험 급여를 더 타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내용의 공익신고로 촉발된 사건입니다. 직원들의 공익신고로 시작돼 수사로 이어졌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됐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A한의원 측은 공익신고를 한 직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수사기관의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그동안 입은 피해를 수억 원대로 배상하라는 취지입니다.
수사기관이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공익신고자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최근 열린 항소심 재판에서 이 질문이 그대로 던져졌습니다. 법정B컷은 지난 8일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 변론준비기일이 열린 서울고등법원으로 가봅니다.
수사기관 '무혐의' 처분하자…한의원 측 "2억 원 배상하라"
이 사건은 2021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A한의원 소속 직원들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비실명 대리신고' 방식으로 병원 운영 실태를 알렸습니다.최대 입원 기간이 끝난 환자를 사실상 동일하게 운영되던 다른 한의원으로 옮기거나, 빠르게 퇴원한 환자를 '썩은 고기'라고 부르는 등 환자를 돈벌이 수단처럼 취급했다는 의혹이었습니다. 보험 급여를 타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환자들이 두고 간 영수증을 모아 한의원 이용 후기를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간호기록지를 원장 가족이 대리로 수개월 치를 한 번에 작성했다는 주장과, 탕약 관리 부실 의혹도 포함됐습니다.
신고는 수사로 이어졌습니다. 권익위가 관련 자료를 경찰에 이첩했고,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혐의없음'이었습니다. 경찰은 2022년 10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처분을 내렸습니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자, 한의원 측은 공익신고자들을 상대로 책임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원칙적으로 공익신고로 인해 피신고자가 손해를 입더라도 신고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제보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신고했거나, 부정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A한의원 측은 이번 사건이 이러한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제보자들이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신고했고, 그로 인해 병원 운영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입니다.
| ▶2025.10.16. '썩은 고기' 한의원 공익신고 손배소 1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23가단257895) |
| 가. 원고 피고들은 이 사건 신고 내용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비방할 목적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허위사실을 신고하였고, 같은 내용의 허위사실을 언론매체에 제보하였으며, 환자들의 진료기록부를 무단으로 반출하였는바, 피고들의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는 보건복지부, 보건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조사와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를 받았고, A한의원 및 원고 B가 운영하는 C한의원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판이 하락하여 심각한 매출하락 등의 손해를 입었다. |
"누가 신고자인지 어떻게 알았나"…비실명 제도의 균열
'비실명 대리신고'는 원칙적으로는 신고자의 신원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한의원 측은 어떻게 공익신고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까요.한의원 측은 당시 퇴사한 직원들 가운데 특정 인원들을 지목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은 이 과정을 두고 "사실상 추정에 가까웠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당시 퇴사자들 가운데 몇 명을 특정해서 '이 사람들이 했을 것'이라고 보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겁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하필 특정한 인원 중 실제 공익신고자가 포함됐던 겁니다. 이에 따라 피고 측은 곧바로 딜레마에 놓였습니다. 자신들이 공익신고자라는 점을 밝히지 않으면 방어가 어렵고, 반대로 이를 인정하면 신원이 드러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피고 측은 소송을 방어하기 위해 공익신고자라는 점을 인정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공익신고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실제로 소송이 제기됐고, 피고 측은 이에 대응해야 했습니다.
피고 측은 1심에서 "이 소송 자체가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취지에 따라, 애초에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각하' 대신 피고인 직원들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판결했습니다. 한의원 측은 이에 항소했습니다.
| ▶2025.10.16. '썩은 고기' 한의원 공익신고 손배소 1심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23가단257895) |
| 설사 피고들의 이 사건 신고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더라도,(중략)이 사건 신고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정한 공익신고 등에 해당함이 상당하므로 피신고자인 원고는 이를 이유로 공익신고자인 피고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고, 피고들에게 손해배상청구 제한의 예외사유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
"입증 대상은 한의원 손해 아닌 '허위신고'"…재판부가 짚은 핵심
지난 8일 항소심 첫 번째 변론준비기일을 연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재판 방향을 정리했습니다.|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판사: 오늘 준비 기일에서는 저희가 어떻게 입증할지도 이제 봐야 되는데 일단 이 문제는 다시 얘기를 하도록 하고요. 그거 이외에 지금 항소 이유서를 보면 다른 게 입증할 방법 등등에 대해서는 크게 뭐 나온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원고(한의원) 측 변호인: 저희가 이제 손해를 입증할 자료를 준비 중인데 저희가 아직 그 자료를 모으는 데 좀… 판사: 아니 지금 현재 중요한 건 손해 입증할 자료가 아니고 불법 행위가 (입증)돼야지요. |
하지만 원고 측은 다시 한 번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원고 측 변호사: 입증이 좀 어려운 면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석명을 해 주시면 저희가 입증하는 데 그래도 객관적으로 좀 대등하게 해야 되는데 피고 측에서는 전혀 제출을 안 하고 있으니까 저희로서는 그 신고 자료 일체를 피고 측 아니면 저희가 얻을 방법이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양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피고 측은 즉시 반발했습니다.
|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피고 측 변호인: (원고 측 피해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을 하지만 공익 신고의 성격상 '공익 신고로 인해서 손해를 입은 경우에도 청구할 수 없다'라고 되어 있는 상황에서 만약에 지금 원고 주장처럼 저희가 신고했을 때 자료들을 다 제출해서 이 재판부에서 이런 것들을 심리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이 공익신고자 보호법의 취지를 저희는 몰각시킨다는 생각을 하고요. |
|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판사: 10개 신고했는데 최소한 서너 개라도 사실이 포함돼 있으면 공익 신고로 봐야 되니까(중략)우리가 이거를 (피고 측에게) 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피고 측은 국민권익위원회의 역할도 짚었습니다. 권익위는 당시 직원들의 신고 내용을 검토한 뒤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권익위는 "공익신고자 여부나 부정한 목적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라는 취지로 회신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신고의 출발점에서는 공익성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된 판단에서는 한 발 물러선 셈입니다.
이어 법정에서는 '썩은 고기' 표현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습니다.
|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원고 측 변호사: '썩은 고기'라는 말도 그게 조금 굉장히 환자를 모욕하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취지에서 말한 게 아니라 원고 입장에서는 이제 소위 '나일롱 환자들' 있지 않습니까? 꾀병 부리는, 일종의 보험 사기로 입원한 환자들 그런 거를 이제 비판하기 위해 한 말이었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내용들을 다 왜곡해서 (신고)한 것에서 좀 부정한 목적이라든가 그런 부분을 추정할 수 있지 않나라는 게 원고 측 입장입니다. |
| ▶ 2026.4.8. '썩은 고기' 한의원 사건 손배소 항소심 변론준비기일 |
| 판사: 공익 신고나 뭐든 이런 거에는 다 그런 과장이 좀 들어가 있죠. 그게 그러니까 100을 신고했는데 그중에 한 90개 이상이 다 다 뻥이고 다 과장이 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데 99가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데 어느 정도 이제 정도의 문제인데…. |
그 문턱은 생각보다 높아 보입니다. 이미 1심에서는 '썩은 고기' 표현과 두 한의원을 오가며 근무한 정황 등 일부 사실관계가 인정됐고,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예외 사유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서너 개라도 사실이 포함돼 있으면 공익신고로 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며, 신고 내용에 일부 과장이나 왜곡이 섞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허위신고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의 질문은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수사기관의 무혐의 처분만으로, 공익신고는 곧바로 '허위'가 되는 걸까요. 그리고 그 대가로 신고자들은 수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를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다음 재판에서도 이 질문은 계속 이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