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미중정상회담을 앞두고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9일부터 이틀 동안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회담은 북중이 미국을 겨냥한 '반미 연대'를 재확인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북한의 노동신문과 중국 신화통신 보도를 보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국제문제를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호상 관심사로 되는 지역 및 국제정세문제들에 대한 당과 공화국 정부의 입장을 피력"했고, 왕이 부장도 "국제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표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나라의 상호 관심사가 되는 국제문제는 결국 한반도 문제, 미국과 이란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최근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 정세이다.
김 위원장은 양국의 친선강화가 "국제적인 현 지정학적 형세와 전망적인 두 나라 전략적 이익의 견지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 중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며 이란과도 전쟁을 하는 국제정세에서 북중 양국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지정학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대화 과정에서 두 나라의 친선관계는 "사회주의를 핵"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했고, 시진핑 주석도 왕이 부장을 통해 "중조가 모두 공산당이 영도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공동의 이상·신념과 분투 목표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정상이 사회주의 국가 정체성을 확인하며 미국을 겨냥한 사회주의 연대와 결속을 강조한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특히 "'하나의 중국'원칙에 입각하여 나라의 영토완정을 실현하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다극세계건설을 위한 중국당과 정부의 모든 대내외정책들을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중국 보도에서는 김 위원장이 "각자의 사회주의 사업 발전을 추진하며, 양국 인민의 복지와 세계 평화·안정에 마땅한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세계 평화와 안정'은 미국 패권에 반대하는 중국의 '다극세계' 건설과 통하는 말로 사실상 반미 연대를 뜻하는 것이다.
두 정상이 이처럼 사회주의 연대를 새삼 과시한 것은 분명한 의도가 깔려있다.
중국으로서는 다음 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과 미중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일방주의에 대응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인한 측면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국도 뒷배로 두고 있음을 과시했다.
미국이 올해 초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 압송하고 핵 문제를 명분으로 현재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불투명한 국제정세에서 중국과의 연대 과시는 매우 긴요한 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복잡다단한 국제정세를 내세워 비핵화 불가 및 핵 무력 강화 입장을 중국 측에 강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두 사람의 대화에서 향후 북미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의견 교환이 이뤄졌을지도 관심이다.
파키스탄이 중재하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협상이 성과를 내 국제정세가 안정된다면 북미대화의 추진 동력이 다시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9차 당 대회에서 핵보유국 인정과 적대시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을 향해 과거보다 좀 더 진전된 메시지를 낸 바 있다.
북한이 마두로 압송과 이란 전쟁에 대한 미국의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고 있는 것은 향후 정세 전환에 대비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해 11월 경주 에이펙 정상회의 계기에 김 위원장을 향해 여러 차례 유화적 메시지를 낸 것처럼 다음 달 중국 방문 과정에서 관련 메시지를 내기 시작한다면 북미대화의 재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왕이 부장은 김 위원장과의 접견에서 양국 관계의 발전만이 아니라 향후 다양한 상황 전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의사 타진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왕이 부장은 귀국 후 접견 과정에서 들은 김 위원장의 각종 메시지를 시 주석에 전할 것이다.
미·이란 전쟁의 향배 등 향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서는 시 주석이 다음 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설명하며 대화의 중재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왕이 부장과의 접견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가장 귀중히 하고 최우선적으로 중시"한다며 "모든 대내외정책들을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향후 다양한 상황 전개에 대비해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우선적으로 확인해 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