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 위로 분홍 벚꽃이 꽃비 되어 내리던 지난 주말,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 청춘들이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들 안에 빼곡히 자리 잡았다. 그들의 젊음은 절정에 이른 듯했지만, 봄기운 가득 밴 싱그런 꽃나무에 대비된 표정이 덧입혀져 있다. 묵묵한 얼굴로 애써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는 이들 앞에 시험지와 답안지가 한장씩 놓여졌다. CBS의 신입사원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 전형이다.
살짝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자못 크게 울릴 정도로 숨죽인 고사장 안에는 공기의 흐름마저 멈춰 세울 것 같은 긴장감이 흘렀다.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모았고 다른 누군가는 때때로 긴 한숨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손톱을 무는 이, 머리를 긁적이는 이도 눈에 띄었다.
시험 종료 시간이 임박하자 펜을 든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고, 이를 보고 있자니 한 글자라도 더 적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렇게 140분 동안 지원자들 앞에 감독관으로 서있으며 콧날이 시큰했다. 이들의 간절함에 고맙고도 미안했기 때문이다.
무직 청년들의 가파른 증가세…대책은 여전히 미흡
그 절실함의 배경은 매해 고공행진하는 청년실업률일 터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841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3만명 증가했지만 15~29세 청년취업자 수는 오히려 14만 6천명이 줄었다. 그리하여 청년실업률은 지난 2021년 이후 가장 높은 7.7%로 올랐다. 이런 가운데 'AI 때문에 이제 신입사원이 필요 없다'는 말이 툭 들려올 때면 청춘들은 황망함에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그러나 이 정도 대책으로는 청년 실업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독이긴 어려울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일 하지도, 일자리를 구하지도 않는 '쉬었음' 인구의 규모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뚜렷해진다. 사실상 구직 활동을 단념해 실업률 통계에도 안 잡히는 '쉬었음' 청년층(15~29세)은 약 48만 5천명. 그 범위를 30대까지 넓힐 경우 확장된 청년층(15~39세) 가운데 78만 명을 웃도는 이들이 근로 의지마저 꺾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만 5천명의 '쉬었음' 청년에게 훈련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라지만 광범위한 고용한파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의 파국적 도화선, 서둘러 끊어야
이쯤 되면 옆 나라 일본의 상황이 부러울 수밖에 없다. '완전 고용' 상태가 5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의 기업들은 더 많은 청년들을 채용하지 못해 안달이다. 현재의 고용 천국 상황은 과거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비롯됐다. 청년기에 일자리를 놓치면 평생의 경로가 무너지고, 결국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후 어떻게든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노동 시간과 함께 임금도 줄여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방안으로 고용 천국의 마중물을 마련했다.이와 같은 일본의 사례도 좋고, EU의 '청년보장제'도 좋다. 구직 청년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훈련 기회를 반드시 제공토록 하는 제도다. 무엇이 됐건 구직난 속 청년과 '쉬었음' 청년의 규모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정부는 더 팔을 걷어붙여야 할 때다. 구직과 구인 사이 눈높이가 맞지 않다면 그 갭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고, AI 확산으로 노동 지형이 개편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고용을 창안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마주할 내일과 그들에게 맡겨질 우리 사회의 미래상이 아찔하다면, 그들 각자에게 직업을 쥐어주는 건 시혜가 아니다.
CBS 신입사원 필기시험이 종료하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은 뒤, 고마운 청춘들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CBS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열정이 더 빛날 수 있도록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이는 비단 CBS만의 약속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각박한 현실을 물려주고 있는 기성세대 모두의 약속이어야 한다. 청춘의 열정이 저물기 전 더 적극적인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파국의 도화선을 끊어내야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