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이후 10여 년…갈등은 왜 반복되나

[지방은 전력 식민지인가②]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최호영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수십 년 참았는데 '또'…지방이 전력 식민지냐"
② '밀양 송전탑' 이후 10여 년…갈등은 왜 반복되나
(계속)

송전망 건설 논란에서 '밀양 송전탑'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국의 전력망 구축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갈등으로 꼽히는 이 사건은, 여러모로 최근의 송전탑 갈등과 닮은꼴이다.


10여 년 전에도 전력 불평등…하향식 정책의 한계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보내기 위한 765kV 송전선로와 송전탑 건립이 추진됐다. 이 거대한 전력망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 역시 전력 소비가 집중된 '수도권' 등 대도시였다.

경남 밀양을 관통하는 노선은 건강권과 재산권 침해, 환경 파괴 등을 우려한 주민 반대와 부딪쳤다. 특히 이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협의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상동면 주민들이 2005년 한국전력 밀양지사 앞에서 집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기나긴 송전탑 반대 투쟁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송전탑 건설에 반대한 어르신 두 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도 발생했다.

전국적인 연대 시위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2014년 대규모 경찰 병력이 투입돼 농성장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이뤄졌고 송전탑은 완공됐다.

밀양지역 부북·상동·단장·산외면에는 송전탑 52기가 세워졌다.

이 사건은 전기의 대량 소비지인 수도권을 위해 전기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지방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는 '전력 불평등' 문제를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시켰다. 또한 국가 주도의 하향식 정책이 가지는 한계와 폭력성을 여실히 보인 사례로도 남았다.


'주민주도 입지선정'으로 전환됐지만…반복되는 갈등, 왜

충남을 지나는 송전탑과 송전선로. 김정남 기자

밀양 송전탑 건설 사례 이후 송전선로 건설 과정에는 '주민주도 입지선정' 방식이 도입됐다. 과거 한전이 경제성과 효율성만 따져 노선을 정한 뒤 주민에게 통보하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결과였다.

이후 도입된 주민참여형 입지선정위원회는 말 그대로 입지선정 단계에서의 주민 참여를 표명한다.

해당 지역의 주민대표와 전문가, 지자체 공무원 등으로 구성되며 한전은 기술적·행정적 지원만 하고 노선 결정은 위원회가 맡는다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이광직 한전 전력망입지처장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법제화가 이뤄졌고, 2024년 2월 이후 구성되는 입지선정위원회부터는 한전이 임의로 선을 긋는 대신 지자체장이 추천한 주민, 위원들로 구성된 입지선정위에서 긋고 있다"며 "그 나름대로 객관성을 확보하고 담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방식 대비 사업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측면을 갖고 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밀양 송전탑 투쟁 10여 년 뒤 지역 곳곳에서는 여전히 '일방적인 추진'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박범석 충남 송전탑 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관련법에 의해 한전에서는 지자체로 공문을 보내 입지선정위원을 선발하도록 요청한다. 그러면 60일 이내 선발하게끔 되는 것이 법적 내용"이라며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일반 주민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입지선정위원회가 구성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2-신서산 송전선로' 8차 입지선정위원회 현장을 찾은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가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대책위 제공

지난달 30일 전북 군산 새만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2-신서산 송전선로' 8차 입지선정위원회 현장을 찾은 충남 송전탑 백지화 대책위원회 역시 강하게 반발했다. 대책위는 "주민에게 묻지 않고 '주민대표'를 입지선정위원으로 선임하고, 시작과 끝점을 정해놓고 한전이 정한 기준에 따라 노선(안)을 만들어 표결로 입지를 선정하도록 압박하는 방식"이라며 "절대 '주민주도 입지선정'이라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책위는 "한전은 '주민주도 입지선정'이라는 이름으로 송전선로 건설 사업에 주민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실상은 밀양 투쟁 전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주민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참관인 제도, 사전협의회 개최, 부위원장 제도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주도 입지선정' 도입 이후에도 낮은 주민 수용성에 대해 한전에서는 "기피시설이다 보니 수용성이 굉장히 낮다"며 "소통 문제는 저희가 여전히 갖고 있는 숙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산지와 소비지의 극단적 불균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절차를 둘러싼 논란 또한 해소되지 못한 채 추진되는 송전선로 건설은 그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키우며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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