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천 명…죽음으로 내몰리는 현대판 노예, '이주 노동자'


[앵커]

고난주간, 우리 사회 고통 받는 이웃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차별과 구조적 폭력 속에 '현대판 노예'라 불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살펴봅니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농촌·중소기업 인력난 속에서 정부는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들이고 있지만, 정작 건강과 안전, 기본적인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오요셉 기자입니다.

[기자]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아지트 씨.

2021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건강검진까지 마치고 합법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쇳가루가 날리는 작업장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방진 마스크도 없이 면 마스크 하나에 의존한 채 하루 11시간씩 일해야 했습니다.

몸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동안에도 병원에 제때 가지 못했고, 결국 폐 기능의 40%를 잃었습니다.

[아지트 / 방글라데시 노동자]
"계속 병원에 가고 싶어도 병원에 안 보내주고, 반장님 말해요. '괜찮아 일해' 이렇게 하다가 너무너무 심하게 아파요. 걷지도 못해요. 가족과 함께 조금이나마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한국에 왔지만 행복 대신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장기인 폐의 40%를 잃어버린 후 저는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 씨. 아지트는 한국 농기계·기계제조 공장에서 금속 연마 작업을 하다 심각한 폐질환을 얻었지만, 산재 인정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의 거듭된 '시간 끌기'와 불승인에 맞서 싸우고 있다. 오요셉 기자

포천이주동자센터와 보성교회의 도움으로 수술과 치료를 이어가며 4년 넘게 심사와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산재 인정을 받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의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료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감정을 신청하는 등 재판을 지연하며 책임을 끝까지 미루고 있습니다.

[아지트 / 방글라데시 노동자]
"(회사에서) '왜 산재 신청했죠' 너무 너무 협박하고, '산재 신청 취소해라', '여기 사인해라', 이렇게 말하고, 너무 어렵게 만들었어요. (근로복지공단이) 법원이 임명한 공정한 의사의 소견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노동자 일 뿐입니다. 부디 저에게 이런 불의를 행하지 말아 주십시오."

노동·인권단체와 변호인단은 "근로복지공단의 현장 역학조사는 산재 신청 후 약 8개월이 지나서야 이루어져 핵심 증거 확보 기회를 스스로 놓쳐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미 직업환경의학과의 감정으로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상황인데도, 뒤늦게 재감정을 신청했다"며 "공단이 불리한 감정 결과를 뒤집기 위해 '감정 쇼핑'을 하며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요셉 기자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는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죽음과 사고는 실제 피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1년에 사망하는 이주노동자가 3천 명이 넘지만 사인 규명도 제대로 되지 않다는 겁니다.

[김달성 목사 /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런 움막 같은 시설에서 많이 기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낮에 고강도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쉼을 보장할 수 없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까 속행씨처럼 기숙사에서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요. 또 공장도 우리가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많이 다치고 죽는 사례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김 목사는 이 구조적 고난이 단지 몇몇 사업주의 일탈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부터 비롯된 국가 폭력이라고 비판합니다.

현행 고용허가제 아래에선 고용주의 눈밖에 나면 비자 연장을 못 해 체류와 생계가 한꺼번에 끊기는 데다, 사업장 변경도 사실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달성 목사 /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절대군주와 같은 권한을 가진 고용주가 오로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만 이주 노동자를 부리다 보니까 노예처럼 부리는 경우가 참 많지요. 고용주에게 밉보이면 고용 연장을 못 받을까 봐 감히 문제 제기를 못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제도 하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비인간화되는, 하나님의 형상을 심히 잃어버리는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죠."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한 농장의 이주노동자 숙소.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 김달성 목사는 "이주노동자 숙소의 80%이상이 불법 가건물"이라며 "소방 시설이나 단열 등 주거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요셉 기자

김 목사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는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더 이상 굴러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먼저 환대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달성 목사 /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지극히 작은 사람들'입니다. 절실히 느끼는 것은 (교회 안에도) 경제, 인종 차별주의가 심하다 하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좀 밀어내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우리가 다 같이 가져야 되겠다…"

비닐하우스 숙소와 분진 가득한 공장, 그리고 병원 문턱을 맴도는 이주 노동자들. 오늘날 우리가 십자가 곁에서 손 내밀어야 할 이웃입니다.

CBS뉴스 오요셉입니다.

[영상기자 정선택 최내호] [영상편집 서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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