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불 수교 140주년, 문화·기술·산업 전략적 파트너십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문화교류 기자간담회. 연합뉴스

우리는 흔히 한불 관계를 떠올릴 때, 오랜 역사와 깊은 문화적 유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양국 관계는 그 익숙한 전통의 틀을 넘어 훨씬 역동적이고 실전적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오는 4월 2일부터 3일까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는 이번 만남은 '한불 수교 140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인공지능(AI), 우주, 원자력 등 첨단 기술과 미래 산업 협력을 본격화하는 전환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최근 프랑스는 기술 주권 확보와 산업 생태계 재건을 목표로 '프랑스 2030 투자계획(Plan d'investissement France 2030)'을 추진 중이다. 540억 유로가 투입되는 이 계획은 첨단 기술의 개발을 넘어 프랑스 산업 전반의 재구조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산업화 적용 범위와 확장 속도를 높여야 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도체와 제조, 디지털 인프라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은 프랑스와 상호보완적 협력이 가능한 핵심 파트너로 평가된다. 우리에게도 프랑스는 유럽 시장의 관문이자 탄탄한 기초과학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국가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다뤄질 AI, 반도체, 양자 분야의 협력 의제는 미·중 강대국 중심의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양국이 기술 주권을 지키고, 미래 산업에서의 전략적 자율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 기업들이 유럽의 복잡한 규범 환경 속에서도 정당한 경쟁 여건을 확보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다. 더 나아가 단순한 기술·산업 협력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과 규범 질서, 생태계 강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목표로 하는 '글로벌 책임강국'의 실천 의지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특히 AI 분야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협력 영역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모두 자체 플랫폼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소버린 AI'를 능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중견국들이다. 한국이 'AI G3'를 목표로 컴퓨팅 인프라와 산업 적용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역시 미스트랄 AI(Mistral AI)와 같은 챔피언 기업을 중심으로 유럽형 거대언어모델(LLM) 생태계를 구축하며 기술 종속을 완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기초과학 및 알고리즘 경쟁력과 한국의 AI 반도체 및 인프라 제조 기반이 결합할 경우, 미·중 강대국 중심의 AI 공급망에서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 형성 과정에서 양국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우주국(ESA)의 핵심 국가이자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 역량을 축적해 온 국가이며, 한국은 우주 신경제 시대를 대비한 혁신 생태계 조성과 우주자산 안보 강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위성 탐사와 발사체 기술 협력을 구체화함으로써 우주산업 전반에서 협력의 실질적 기반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안보 역시 양국이 손을 맞잡아야 할 핵심 과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원전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지금, 세계 최고의 원전 설계 노하우를 가진 프랑스와 건설·운용에서 높은 효율성을 입증한 한국의 파트너십은 글로벌 원전 산업에서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양국은 차세대 중소형 원전(SMR) 개발과 해외 원전 시장 공동 진출 방안 등을 통해 안정적인 시장 기반과 협력 기회를 선제적으로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한불 정상회의는 미래의 공동 번영을 설계하는 출발점이자 '실용외교'를 구체화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전통 문화강국인 프랑스와 신흥 문화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의 만남은 이제 문화와 기술·산업 영역으로 확장되며, 양국 관계를 보다 입체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불 관계의 성격과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는 유럽과 인도·태평양을 연결하는 협력의 축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에서 중견국 협력이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윤정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AI안보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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