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좌타자 김현수(38·kt)는 사실상 생애 첫 잠실 원정을 앞두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두산과 LG 등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만 뛰다 올해 처음으로 홈 구장이 바뀌었다.
김현수는 2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리그' LG와 원정 개막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오늘 처음 잠실 원정에 임하게 됐는데 많은 감정이 든다"고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김현수는 지난 2006년 두산에 육성 선수로 입단해 2015년 첫 우승을 거뒀고, 메이저 리그(MLB)에 진출했다가 복귀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LG에서 활약했다.
특히 김현수는 지난해 한화와 한국 시리즈 최우수 선수(MVP)에 올랐다. 이후 3년 50억원(계약금 30억원·연봉 총액 20억원)에 kt에 새 둥지를 틀었다.
김현수는 "오늘 첫 타석에서 야유를 받지나 않으면 좋겠다"고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LG 선발 요니 치리노스에 대해 "지난해까지 같이 뛰어 친하지만 서로 전력을 다해 상대하진 않았다"면서 "라이브 피칭 대결에서는 서로 컨디션 점검 수준이라 사실 오늘이 첫 대결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지난해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적으로 만난다. 김현수는 "오지환이나 박해민이 타구를 잡으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다이빙 캐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그래도 승부는 승부다. 김현수는 "오늘 나는 못할 것 같지만 팀은 이겼으면 좋겠다"면서 "144경기 모두 이기고 싶은 게 프로 선수"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현수는 경기 전 LG 김용일 수석 트레이닝 코치의 시구 때 시타자로 나섰다. 이후 2번 타자 1루수로 나선 김현수는 1회 첫 타석으로 들어서면서 관중석을 향해 헬멧을 벗고 인사했다. 우려와 달리 LG 팬들은 김현수의 이름을 연호하며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김현수는 LG 입단 뒤 성실한 자세로 선수단의 훈련 문화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2023년, 무려 29년 만에 LG의 통합 우승을 이끌며 쌍둥이 팬들의 한을 풀어줬고, 지난해 다시 우승컵에 기여한 공로가 컸다.
부진할 것이라는 우려는 맞는 듯했다. 김현수는 1회초 1사에서 치리노스의 5구째를 받아쳤지만 중견수 박해민에 잡히는 등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kt는 1회 김현수의 아웃 뒤 난조에 빠진 치리노스를 공략해 대거 6점을 뽑는 등 6회까지 8-3으로 앞섰다.
하지만 김현수는 5번째 타석에서 기어이 안타를 뽑아냈다. 7회초 1사 2루에서 백승현으로부터 우전 적시타를 뽑아내 타점을 올렸다. 이후 김현수는 힐리어드의 홈런 때 홈을 밟아 쐐기 득점도 보탰다.
김현수는 이 안타로 역대 개막전 최다 타이인 20안타를 기록했다. 김광림, 김태균, 정근우(이상 은퇴)와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삼성 강민호는 이날 롯데와 대구 홈 개막전에서 무안타에 그쳐 공동 1위를 형성했다.
kt는 김현수의 안타로 구단 1호이자 KBO 통산 6호 개막전 선발 전원 안타 기록을 세웠다. 힐리어드의 아치로 kt는 역대 11번째 팀 1400홈런도 달성했다.
이날 kt는 장단 18안타를 앞세워 11-7 승리를 거뒀다. 김현수는 이날 5타수 1안타 1타점 1볼넷으로 본인의 우려처럼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바람처럼 팀은 경기에서 이겼다.
9번 타자 유격수로 나선 이강민은 이날 3안타(2타점 1득점)로 1996년 장성호(당시 해태) 이후 30년 만에 고졸 신인 개막전 3안타를 때렸다. 역대 2호 기록으로 이날 키움과 대전 홈 경기를 치른 한화 오재원도 고졸 신인 3호 기록을 이었다.
디펜딩 챔피언 LG는 1선발 치리노스가 1회만 6점을 내주며 무너진 게 아쉬웠다. 8회말 상대 야수 선택 등으로 2점을 내는 등 12안타 7점을 뽑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날 잠실구장에는 2만3750명 만원 관중이 들어차 시즌 개막전을 뜨겁게 달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