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위기에 더 중요해진 북극항로…한러관계는 뒷걸음

주한 이란대사 "韓선박 호르무즈 항행 불가" 못 박아…에너지 안보에 경종
수입선 다변화 나섰지만 한계…북극항로는 거리 이점 뿐 아니라 자원의 보고
러 외무부, 한미훈련 비판하는 등 관계 악화…러 협조 없이는 북극항로 접근 불가
정부는 소극적 태도 일관…"이재명 정부 9개월 됐지만 한러관계에는 무신경"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따른 중동 정세 악화로 우리의 핵심 원유 공급선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가 조기에 수습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은 근본적 해결이 어려운 지정학적 취약성에 상시 노출돼 있기에 대체 공급망의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원유 수입에서 중동산 비중은 약 70%이며 거의 전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왔다. 해협 안쪽의 페르시아만에 접한 걸프 국가들이 주 공급처다. 
 
이와 관련, 사이드 쿠제치 주한이란대사는 26일 CBS '박성태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미국과 거래하는 한국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에너지 안보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산업계는 미주 지역 등으로 수입선 다변화에 나섰지만 중동을 대체할 공급망으로는 큰 한계가 있다.
 
다만 기후 온난화로 접근성이 좋아진 북극항로는 얘기가 다르다. 북극항로는 수에즈 경유 대비 운항 거리가 30~40% 줄어드는 것과 함께, 북극 자체의 막대한 자원 및 에너지 매장량도 장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지질조사소(USGS)의 2008년 조사 결과 북극권에는 전 세계 미발견 석유 및 가스 자원의 약 22%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됐다. 
 
북극권이 아니더라도 내륙 시베리아 지역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철, 비철금속, 목재 등 자원의 거대한 보물창고이며 이미 개발이 진행 중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17일 '넥스트 호르무즈로서 북극 해양·에너지 안보의 새로운 전장'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북극항로는 주로 해운·조선 산업의 신시장 기회로 논의돼 왔다"며 "그러나 이번 호르무즈 위기는 북극항로를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대안 경로로 재정의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짚었다.
 
호르무즈 해협. 연합뉴스

물론 북극권의 경우 극한 기후 등으로 인한 개발 비용이 상당한 것은 물론, 러시아 정부의 허가와 통제 등에 따른 정치적 비용이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결국 2022년 러·우 전쟁 이후 급격히 냉각된 한·러 관계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관리해야 함을 말해준다.
 
정부는 러·우 전쟁 발발 직후 미국과의 공조를 통한 대러 제재는 물론 독자 제재의 강도를 계속 높였다. 이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는 등 크게 반발했고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체는 상당한 피해를 봤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2년 3월 첫 대러제재에서 57개를 고시했던 수출통제품목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인 2023년 2월 741개, 같은 해 12월엔 682개, 2024년 9월엔 243개가 추가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7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양국 정상회담을 갖고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을 언급하며 강력한 연대 의사를 밝혀 러시아를 자극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그 이듬해인 2024년 6월 북한과 사실상의 군사동맹인 포괄적 동반자협정을 전격 체결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분석된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선 최근 종료된 한미연합군사연습(자유의 방패·FS)을 두고 "명백한 전쟁 준비와 다름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러시아가 한미연합연습을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기존에는 "우려"나 "비생산적", "도발적" 수준의 표현에 그쳤던 전례에 비춰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북극항로 진출은 러시아의 협조 없이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여객기 직항 재개 등 덜 민감한 분야부터 순차적으로 관계를 풀어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때마침 미국이 중동 사태로 인한 오일쇼크 우려를 감안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한시적으로 완화한 것은 기회의 창이 되고 있다. 
 
정부는 그러나 대러관계에 관한 한 극히 소극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더 경계하는 중국과는 관계를 크게 개선한 것이나, 일본 등이 대러제재 동참 와중에도 실리를 챙기는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같은 경우 주러시아 대사까지 역임했음에도 이재명 정부 출범 후 9개월이 넘는 동안 한·러관계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도 한 적 없다"고 정부의 무신경을 비판하며 정책기조 전환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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