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불법 여론조사를 한 혐의로 고발된 수지 신용협동조합 이기찬 이사장이 과거 임원이었던 한 측근 인사의 성 비위를 덮기 위해 직원들에게 비밀 유지 서약서를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울러 징계 등 처벌을 내려야 할 해당 임원에게 4억 원 대 명예퇴직금까지 지급한 사실도 파악됐다.
전 직원 성명서 '징계면직' 요구에도 '희망퇴직' 무마
2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19년 12월 17일 수지신협 직원 30여 명은 서명과 지장을 찍은 성명서를 제출했다. 성명서에는 당시 본점 임원이던 A씨의 성추행을 문제 삼아 즉각 사퇴와 이사회 징계면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복수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다수의 여직원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다. 파악된 피해자만 최소 1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A씨가 회식 후 귀가하는 여직원을 집 앞까지 따라가거나, 직장 내에서 신체 접촉을 반복하는 등 다양한 수법의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직원들의 요구에도 이 이사장은 징계와 형사 고발 대신 사건을 덮는 쪽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성명서가 제출된 지 6일 뒤인 12월 23일, 이사장 측은 전 직원에게 "직장 내 성희롱 사건과 관련해 일체의 정보에 대해 절대 비밀을 유지하라"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다.
이후 A씨는 명예퇴직을 신청했고, 이듬해 1월 8일 열린 임시 이사회는 A씨 관련 '개인 사정에 의한 명예퇴직 승인의 건'을 의결했다.
내부 규정 위반한 '4억 원대 명예퇴직금 지급'
신협중앙회의 내부 규정상 성범죄에 대해서는 징계위원회 개최와 형사 고발이 원칙이다. 이와 더불어 '징계 또는 비위와 관련해 퇴직하는 자'에게 희망퇴직 수당을 지급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규정을 무시됐다. 결국 A씨는 이 이사장의 비호 아래 4억 1천여만 원의 명예퇴직금까지 챙겼다.
이 같은 결정에 조합 내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이 이사장은 6년이 지난 최근 또 다시 감사를 진행하는 명목으로 '비밀 유지 및 공정성 확보를 위한 서약서'를 제출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난 20일 임직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조합의 내부 의사결정 사항이 정당한 절차 없이 유출되어 취재되는 것에 대해 명예와 신뢰가 훼손되고 있다"며 해당 사안이 외부로 나갈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6년 지나 '언론 제보자 색출' 명목 감사 실시
공문이 전달된 지 사흘 뒤인 지난 23일 수지신협 감사실은 '언론 제보 사안 일체 전수 점검'을 명목으로 부문 감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는 과거 성명서에 서명했던 직원들을 상대로 외부 공유 여부를 파악하는 설문조사도 이뤄졌다.
이 같은 상황에 일부 직원들은 "성추행 가해자에게 수억 원의 명예퇴직금을 준 것이 합당하냐"며 반발하며 "보복성 색출 감사"라고 지적했다.
신협 감사실은 지난 25일 해당 조사에 대해 "서명 참여 여부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문서 유출 경위를 확인해 혼란을 불식하기 위한 행위"라며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확인된 사실에 따라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기찬 이사장은 CBS노컷뉴스의 입장 요청에 "가해자의 즉각적인 사퇴를 유도해 피해자들의 2차 피해를 차단하기 위한 경영상 결정"이었다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해고 소송 등 장기간의 법적 분쟁에 따른 유무형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시 규정에 의거해 내린 최선의 판단"이라고 해명했다. 내부 규정상 비위 행위자에게는 명예퇴직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2016년 취임해 약 10년간 수지신협을 맡아온 이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신협중앙회장 선거 관련 불법 여론조사 혐의로 대전시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당했다.
해당 사건을 이첩받은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이 이사장을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참고인 조사와 법리 검토 등을 진행해 공범 등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