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선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공연이 있어 오후 3시부터 시청역을 무정차 통과한다는 방송이 거듭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종각역에서 내리라고도 전했다.
종각역을 나와 공연 장소 근처로 갈 때, 경찰이 우회로를 안내했다. 직진 경로는 막혔고 청계천 쪽으로 가야 했다. 팬 인터뷰를 마치고 시청역으로 이동하려 하니, 말로만 듣던 짐 검색대가 나왔다. 백팩을 열고, 주머니 속 소지품을 전부 꺼내고, 팔을 든 채 금속 탐지기로 몸수색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광화문은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이자, 업무 상업 지구이며 문화 명소다.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광화문 일대에 오거나, 별다른 용무 없이도 그곳을 지나치는 이들이 늘 많다. 방탄소년단의 광화문 광장 공연이라는 '빅 이벤트'가 벌어져 취재차 현장에 올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도, 통행이 막히거나 검문을 당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공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와야만 하는' 사람도 이런데, 공연과 무관한 이들이라면 어떨까. 광화문 일대를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받는 각종 절차를 예외 없이 거쳐야 했다. '국가 유산급' 아티스트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장소에서 여는 '컴백 공연' 앞에서, 시민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일상이 사소화되고 뒤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만 같았다.
상징적인 장소에서 무료 공연을 여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국내에서는 '강남스타일'로 신드롬을 일으킨 싸이의 2012년 서울시청 앞 공연이 대표적이다. 당시 싸이는 8만 관객과 함께 열광적인 밤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닌 야외 명소에서 무대를 펼치는 것이 최초이거나 유일하지 않다는 의미다.
K팝 역사에 무수한 '최초' '최고' '최다' 기록을 세운 방탄소년단이 3년 9개월 만에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을 발매했다. 타이틀곡 '스윔'(SWIM)이 영어 가사로 돼 있고 영어가 두드러진 수록곡이 있지만, 앨범 전반에 한국적 요소를 넣으려고 애쓴 앨범이 바로 '아리랑'이다.
첫 트랙 '바디 투 바디'(Body to Body) 후반부에는 아리랑 선율 일부를 넣었고, 앨범 로고 역시 아리랑의 초성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태극기의 '건곤감리' 철학을 담았다. 떠남과 그리움, 다시 나아감을 노래하는 민요 '아리랑'에 착안해, '지금 방탄소년단의 고민'을 풀어냈다. "김구 선생님 tell me how you feel"이라는 '에일리언스'(Aliens)의 가사는 앨범 발매 직후 내내 회자된 바 있다.
이들이 택한 컴백 공연 장소는 광화문이었다. '한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슈퍼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다시 컴백한다면 그 시작점은 한국이어야 하고, 가장 상징적인 공간이어야 한다'라고 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아이디어가 출발점이 됐다.
'높은 화제성을 지닌 주체가 앨범 주제 등을 고려해 엄선한, 해외에는 아직 낯설 수 있는 장소에서 컴백 공연하는 장면이 글로벌 OTT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도달한다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방탄소년단 공연을 보기 위해 입국한 관광객은 소비 진작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방탄소년단 컴백 공연을 광화문에서 진행하자고 했을 때의 기획 의도는 아마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기획자와 실행자, 관계자들은 광화문이 '광장'임을, 특정한 누군가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곳이라는 것을 잊은 듯 보였다.
'테러 등의 위험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서울시와 경찰·소방 등 관계당국은 어느 때보다 촘촘하고 치밀한 통제에 나섰다. 개최 전부터 쌓이는 새로운 소식은 대개 피로하고 의아한 내용이었다.
결혼식 하객이어도 모바일 청첩장 등 하객임을 알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경찰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거나, 종로구 주변은 주말 동안 택배 배송이 지연될 수 있으며,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불심검문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매주 열리는 대형 공연과 스포츠 경기에도 수만 명이 모이고 드나들지만 이 정도로 '잡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금세 형평성과 설득력이 무너진다.
질문은 꼬리를 문다. 사기업(하이브) 소속 아이돌 컴백 행사의 독점 중계(넷플릭스)를 위해 많은 것이 '들러리'가 되어도 되는가? 'BTS노믹스'라 규정할 만큼의 가시적·비가시적 경제 효과(기대 수익)는 지켜져야 할 시민의 권리보다 무조건 앞서는가? 성격상 훨씬 더 '정치적'으로 볼 수 있는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서도 하지 않았던 소지품 검사와 수색을, '위의 뜻'만 분명하다면 이토록 '비정치적인' 행사에서 '동의 없이' 밀어붙일 수 있는가?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설득을 하기보다, 일단 '하고 나서' 사과하는 방식은 온당한가?
김민석 국무총리는 공연 당일 현장 점검 중 "전 국가와 국민이 관심 갖고 지원하고 있고 일정한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이브(와 넷플릭스)의 제안이라 할지라도 이를 승인하고 국가적 역량을 투입해 지원하기로 정하고 실행한 것은 결국 '관'이기에, 김 총리의 발언은 다소 유체 이탈처럼 느껴진다.
주변 역 3곳에서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키고, 버스 등 대중교통도 돌아가게 하며, 까다로운 단계를 거쳐야만 공연 장소 가까이에 갈 수 있게 하고, 관람 장소를 철저히 구획하고, 근처에서라도 공연을 보길 원했던 시민들을 막는 등 숱한 '통제'와 '소외' 속에서 '모두가 즐기는 축제'가 가능했다고 여겼던 것일까.
경찰은 이번 공연을 보기 위해 몰릴 인파를 약 26만 명으로 추산했다. 좌석 수는 2만 2천 석 규모였고,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공연이 시작된 저녁 8시 이후 광화문 일대에 몰린 인원은 4만~4만 2천 명 선이었다. 예상을 훨씬 밑도는 수치다. 하이브는 티켓 예매자 수, 통신 3사 및 알뜰폰 이용자, 외국인 관객 수 등을 종합한 결과, 10만 4천 명이 현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현장을 찾은 관객 수는 예상보다 적었지만, 방탄소년단 컴백 공연을 향한 관심 자체는 대단해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ARIRANG)'은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총 77개국에서 정상(모두 22일 기준)에 올랐다.
'공연'이란 형태의 문화 행사를 아티스트가 어떤 음악으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집중하기보다 기대 효과가 얼마만큼인지를 우선하고 몸 수색 등 무리한 확인 절차를 실시한 정부. 반발 끝에 완화되긴 했으나 '독점 중계권'을 무기 삼아 언론 취재까지 최소화하려고 했던 넷플릭스.
겉보기엔 '무료 공연'이지만 방탄소년단의 완전체 무대를 기다린 팬들의 간절함을 활용해 앨범 구매에 따라 부여되는 응모권을 추첨해 좌석을 제공하고, 많은 제반 시설과 비용을 공권력과 사기업 등에 기대 이벤트를 치르고 다 마치고 나서야 '시민들의 불편 감수 및 배려에 감사하다'라고 밝힌 하이브.
결과적으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축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열린' 공간을 '잠시 빌리는' 처지임에도, 겹겹이 진입장벽을 쌓고는 시민을 객체화해 갖가지 의무를 지웠다. 방탄소년단 컴백을 누구보다 환영하며 현장에 직접 방문하는 수고를 감수한 '관객'에게도, 딱히 '관객'을 자처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1시간가량 열릴 행사를 위해 시민들은 공연을 방해할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입증해야 했고, "길에 서 계시면 안 돼요, 이동해 주세요" 따위의 주문을 몇 분에 한 번꼴로 들으면서 '알아서 얌전히 대기'해야 했으며, 스무 가지가 넘는 반입 불가 물품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나서야 관객석에 입장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왕이면 주변 상권에 들러 넉넉히 돈까지 써야 하는 존재로 호명됐다.
많은 인파가 모였음에도 공연 후 놀라울 정도로 공연장 주변이 깨끗했던 점이나, 아무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점은, 높은 시민의식에 빚진 것일 뿐 시민을 향한 '과도한 통제'를 정당화할 근거로 쓰여서는 안 될 것이다. '보(시)기에 좋은 그림'을 위해서라면 무리수를 둬도 된다는 인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 난리통은,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될 전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