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랑의 또 다른 고백…엄마와 딸의 '소진된 삶'

[신간]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한 개인의 가족사가 한 사회의 구조적 상처를 드러낼 때, 그것은 단순한 회고를 넘어 하나의 '기록'이 된다. 가수 이랑의 신작 산문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2021년 세상을 떠난 언니의 죽음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를 '자살'이 아닌 '소진사(消盡死)'라고 명명한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끝까지 소모하다 사라진 죽음이라는 의미다.

작품은 장례식장에서조차 춤이 이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해, 죽음을 둘러싼 감정의 낯선 결을 드러낸다. "나는 미친년이다, 그리고 우리 언니와 엄마는 더 미쳤다"는 선언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사회와 가족 속에서 반복되어온 여성의 삶을 정면으로 호명하는 문장이다.
 
이랑은 자신의 가족사를 따라가며 가난, 폭력, 돌봄의 부담, 그리고 사랑의 결핍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특히 언니의 삶은 이 책의 핵심 축이다.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언니는 결국 자신을 소진했고, 저자는 그 죽음을 통해 "왜 어떤 삶은 끝내 버텨내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이 특별한 지점은, 이 비극을 단순한 고발이나 피해 서사로만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고통을 기록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사랑의 흔적을 끝까지 붙든다. 죽음의 기억 속에서도 반복되는 단어는 결국 '사랑'이다.

또한 이 책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환기한다. 가부장제, 남아선호, 가족 내 돌봄 노동의 불균형 등은 특정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사회적 조건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이를 비난하기보다 "왜 그런 일이 반복되는지 이해하기 위해" 기록한다고 말한다.
 
문장은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동시에 섬세하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불안, 공포, 긴장—을 구체적인 신체 감각으로 풀어내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이는 노래를 만들어온 아티스트로서의 이랑의 감각이 글로 확장된 결과다.

저자는 "쓰는 데 고통스러웠으니 읽기도 고통스러울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 고통의 끝에 남는 것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의지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부터 출발해, 지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정—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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