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 지하철역 출구부터 이미 풍경이 색다르다. 이날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공연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을 앞두고 형광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은 쏟아지는 보랏빛 인파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계단을 올라서면 보라색 물결의 전 세계 아미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보라색 후드티, 보라색 목도리, 보랏빛 한복까지. 국적도, 나이도, 차림새도 제각각이었지만 이들은 저마다 줄지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 인근 입장을 위한 금속탐지기 게이트 앞으로 선 줄은 세종대로를 따라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렌지색 안전 고깔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보안요원들은 파란 바구니에 아미들의 가방을 일일이 받아 검색했다. 그 줄 위로 보이는 건물 기둥엔 팬들이 직접 만든 BTS의 팬덤 '아미(ARMY·BTS 팬덤명)'의 배너 한 장이 펄럭였다. "광화문의 빛, 우리는 또 서로의 빛이다."
"한국어 가사도 뭉클해"…11년차 미얀마 아미의 보랏빛 한복
팔로워 15만 명을 보유한 미얀마 출신 여행 인플루언서 호안비엔(33)씨는 한국에 자리 잡은 지 올해로 꼭 11년이 됐다. 그가 BTS에 빠진 건 2020년. 유튜브에서 멤버 정국의 솔로곡을 우연히 접하면서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그룹 전체를 향한 팬심으로 깊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봄날'이다. 그는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가사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 노래만 들으면 색다르고 뭉클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는 뮤직비디오 촬영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BTS 성지 투어'를 즐긴다. 15만 팔로워의 여행 계정에는 "BTS가 다녀간 곳을 가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원래 미얀마에서 홀로 공부하던 그가 한국행을 결심한 건 아버지 덕분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K팝 앨범을 선물로 보내주던 것이 첫 인연. 그의 '졸업하면 꼭 한국에 가야겠다'는 다짐이 11년을 이어왔고, 지금은 BTS의 노래를 두고는 "삶의 활력 그 자체"가 됐다고 했다.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2주 전부터 보랏빛 한복 코디를 구상했다. 흰 깃털 목도리와 팬 굿즈도 직접 제작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번 컴백 무대의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 함께 온 친구는 없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공연장에서 아미들과 소통할 생각에 이미 설레요"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친구들이 다 저를 부러워해요"…태국·프랑스에서 날아온 팬심
지난주부터 BTS 공연만을 위해 태국에서 날아온 남완(25)씨는 양손 가득 BTS 사진과 보랏빛 1면 신문을 들고 공연장 인근을 걸어다니고 있었다.
7년째 BTS 전 멤버를 고루 좋아한다는 그가 특히 꼽는 곡은 '땡'. 그는 "RM, 슈가, 제이홉의 랩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공연장 인근에 호텔을 잡고 한국 곳곳을 누비며 여행의 추억도 함께 쌓고 있다는 그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태국 사람이라고 하면 더 미소를 지어주는 것 같다"며 "김밥을 처음 먹어본 것도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웃었다.
프랑스에서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제니(30)씨와 매지스(30)씨는 둘 다 BTS 최애 곡으로 '봄날'을 꼽았다. 매지스가 팬이 된 건 2021년.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에서 나가지 못하던 시기, BTS 노래가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제니는 코로나 이전에 이미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팬데믹 동안 BTS의 퍼포먼스를 접하면서 팬심이 깊어졌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다시 한국에 오고 싶었는데, 이런 기회가 생겨서 친구랑 같이 오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는 맴버의 인형을 보여주며, 아미들에게 받은 BTS 굿즈인 부채를 자랑하기도 했다.
냉면 1천그릇에 보라색 생수까지…광화문 상권도 '보라보라해'
이곳은 행사 시작 직후 이미 200여 명이 다녀갔다. 함께 행사를 돕는 방송인 이창명씨는 "일본, 미국 등 다양한 나라 분들이 들어오셨다"고 전했다. BTS 리더 RM이 신곡 '스윔'을 "평양냉면처럼 담백하고 스근한 매력이 있는 곡"이라고 소개한 것도 이번 이벤트를 결심하는 데 힘을 보탰다는 설명이다. 이씨는 "셰프들도 오늘만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해물요리와 샤브샤브 전문점 등도 가게 앞에 "WELCOME BTS ARMY" 배너를 내걸었고, 한 주류 브랜드는 '보라보라해' 콜라보 포스터로 거리를 수놓았다.
인근 편의점도 어젯밤부터 간판을 보랏빛으로 꾸미고,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바나나 우유와 감자칩을 평소의 10배 넘게 발주했다. 평소 1~2명이던 아르바이트 직원도 오늘만큼은 6명으로 늘렸다. 편의점 생수 코너엔 보라색 뚜껑의 생수가 가득 채워졌다.
이날 이 거리에서만큼은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모두가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금속탐지기에 무정차까지…"국가적 행사" 수준의 통제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서울 광화문 덕수궁 일대엔 2만 6천~2만 8천명이 모였다. 이날 정오보다 4천명 이상 늘어난 모습이다.
현재 붐빔 정도는 '여유' 수준이고, 대중교통을 통해 계속해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공연 중심 구간인 세종대로(광화문~시청)는 공연 다음 날인 22일 오전 6시까지 차량 통행이 전면 금지된다.
주변 도로 역시 시간대별로 통제가 강화된다. 사직로와 율곡로는 오후 4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새문안로는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차단된다. 광화문 지하차도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마교차로 방향이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통행이 제한될 예정이다.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해 세종대로와 사직로 등을 경유하는 86개 버스 노선(마을·경기버스 포함)이 임시 우회 운행한다. 전날 오후 9시부터 시작된 세종대로 우회에 이어, 이날 오후 4시부터는 사직로와 새문안로 구간도 우회로 전환된다. 공연이 끝난 11시부터는 정상 운행된다.
지하철 광화문역(5호선)은 오후 2시부터, 시청역(1·2호선)과 경복궁역(3호선)은 오후 3시부터 각각 오후 10시까지 무정차 운행에 들어간다. 출입구도 전면 폐쇄된다. 역내 곳곳엔 'BTS 광화문 행사 관련 열차 무정차 실시 안내' 현수막이 내걸렸다.
보안 대책도 강화된다. 내일인 22일 오전 1시까지 광화문 인근 17개 주요 역(서울역, 시청역, 종로3가역, 명동역 등)의 물품 보관함 운영이 중단된다. 이는 테러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공연장 출입은 31개 게이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총 80여 대의 문형 금속탐지기가 설치됐다. 특히 티켓 소지자만 입장할 수 있는 '코어존'의 경우, 500mL 이하 생수와 응원봉을 제외한 모든 물품의 반입이 금지된다. 음식물, 주류, 카메라 등 촬영 장비, 대형 가방, 우산 등은 반입 불가 품목에 해당한다. 현장에서는 휴대용 스캐너 300대를 활용한 불심검문도 수시로 진행된다.
공연 종료 후 관람객들의 귀가를 돕기 위한 대책도 마련된다. 오후 9시부터 지하철 2·3·5호선에 각각 4대씩, 총 12대의 임시 열차를 투입해 평소보다 24회 증회 운행한다. 다만, 이 열차들은 인파 분산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전 구간이 아닌 회차 가능한 역사까지만 운행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BTS 콘서트는 이날 오후 8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