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21일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자격평가시험(PPAT)을 치른다. 이는 공직 후보자의 기초적인 소양과 자질을 평가하기 위한 일종의 '출마 시험'이다. 국민의힘은 시험 응시자들을 대상으로 교재(기본서)를 발간하고 이를 바탕으로 별도의 온라인 유료 강의도 제공했다.
이번 교재는 과거 일부 보수 진영의 과격한 표현을 지양하고 '무고한 희생'과 '명예회복과 보상'의 필요성을 명시하는 등 객관성을 확보하려한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중립성 이면에는 당파성에 입각한 '선택적 서술'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제주 4·3 항쟁과 국가보안법 등 민감한 현대사에서 주어 및 맥락 생략과 시기적 오류 등 교묘한 왜곡이 적지 않았다.
제주 4·3, 결과론적 해석과 주어 생략으로 국가 폭력 책임 희석
교재와 강의는 4·3 사건의 원인을 남로당의 무장 폭동으로 규정하며, 그 동기로 '남한 단독 선거 저지'와 '체제 전복'을 동시에 명시했다. 이에 대해 김창후 제주 4·3 연구소장은 "단선 저지 목적의 남로당 폭동이 원인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곧바로 '체제 전복'으로 연결 짓는 것은 명백한 확대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단선 저지를 곧 체제 전복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소장은 "당시 남로당의 동기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막고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며, "이를 대한민국 국가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로 단정 짓는 것은 사건 이후의 결과들을 하나로 묶어 해석한 사후 결과론적 시각일 뿐"이라고 짚었다.
당시의 특수한 시대적 맥락과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구분 짓지 않은 서술이 예비 정치인들에게 편향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해 주체를 불분명하게 처리한 문장 구조는 책임 소재를 희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교재는 진압 과정의 무고한 희생을 언급하면서도, 바로 뒤에 "남로당이 수많은 사람들을 먼저 학살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소장은 "남로당 무장대가 먼저 군경 가족 등을 살해한 사실은 맞으나, 희생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아 마치 남로당이 모든 민간인 희생의 유일한 원인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문장 구성"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3년 국무총리 산하 4·3 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 약 3만 명 중 무장대에 의한 희생은 약 10% 내외인 반면, 대다수인 70~80%는 토벌대(군경)의 진압 과정에서 발생했다. 교재가 사실 나열 속에 특정 가해 주체만을 부각해 국가 폭력의 실체를 가리고 책임을 전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선택적 인용과 사실관계 오류의 함정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 인용 방식 역시 균형을 잃었다는 평가다. 교재는 김 전 대통령이 남로당을 제주4·3의 원인으로 인정한 대목만을 발췌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김 전 대통령은 4·3의 진상 규명과 국가 사과에 앞장섰던 인물"이라며 "자신들의 논리에 유리한 부분만 선택적으로 인용한 것은 역사의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사의 법적 근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기초적인 팩트 오류가 발견됐다. 교재는 정부 수립 초기 군 내 남로당 세력을 척결한 숙군 작업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단행되었다고 서술하며, 이 법이 숙군의 절대적 전제였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당시 군에는 이미 1948년 7월 공포된 '국방경비법'이라는 독자적인 군 형사법이 존재했다.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교재가 숙군 작업을 국가보안법과 연결한 것을 두고 "사실관계가 100% 잘못된 기술"이라며, 실제로는 국방경비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대적인 숙군의 계기가 된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에 발생했으나, 국가보안법은 그해 12월 1일에야 제정되었다"며 "초기 숙군은 국보법이 아닌 국방경비법에 의해 집행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법 시기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특정 법안에 과도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다 발생한 오기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교재는 국가보안법 내 무고죄 조항(제6조)으로 악용 소지를 차단했다고 기술했다. 이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실제 운용 과정에서 조작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전무했다는 점을 들어 법 조항에 실효성이 없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