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자본과 십수 년의 시간이 소요돼 '그들만의 리그'로 불렸던 신약개발 시장에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AI가 단백질 구조를 정밀하게 예측하며 질병의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함에 따라, 신약개발의 성공률은 높이고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추는 '바이오 민주화'의 서막이 올랐다는 진단이다.
18일 오전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제280차 부산경제포럼의 강연자로 나선 석차옥 서울대 화학부 교수(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과학인재분과장)는 AI가 신약개발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조명했다.
석 교수는 "과거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10~15년의 기간과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투입됐지만, 이제는 AI 기반 분석과 예측 기술을 통해 이 과정을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AI가 단백질 구조를 정밀하게 예측하게 되면서, 과거 수만 번의 실험을 통해 찾아내던 치료 단백질 설계를 가상 공간에서 정교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 점을 핵심 변화로 꼽았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산업의 지리적 한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그동안 바이오 산업은 고급 인력과 대규모 자본이 집중된 수도권 대기업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AI 기술은 높은 기술 장벽과 자본의 제약을 완화하며 지역 기업과 스타트업에도 공정한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
양재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이날 포럼에서 "바이오테크는 그간 지역 기업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비용 정밀기술 분야였으나, AI 기술의 발전으로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부산은 이미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는 만큼, AI 기반 바이오 분야에서 지역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 산업의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날 포럼에는 양재생 회장을 비롯해 강성팔 부산지방국세청장, 장순흥 부산외대 총장 등 관계기관장과 지역 기업인 160여 명이 참석해 AI와 바이오의 결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참석자들은 AI 기술이 전통적인 제조·금속 산업 위주의 부산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포럼에 참석한 조주흥 다옴금속 대표는 "강연을 통해 바이오 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고, 미래 산업으로서 바이오테크의 성장 가능성을 기업 경영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