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해 진행 중인 공론화 절차를 둘러싸고 온실가스 감축 경로 논란이 제기됐다. 시민대표단이 숙의를 통해 선택할 감축 경로에 정부가 정한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보다 완화된 방안이 포함될 수 있다는 비판이 시민사회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법 개정은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 논의의 핵심은 2031~2049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감축 경로를 법률에 명문화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16일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론화위원회가 '볼록형 감축 경로'를 시민대표단 340명에게 제시할 설문 문항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비판했다.
볼록형 감축 경로는 2050년 탄소중립(순배출 0)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감축을 늦추고 후반부에 급격하게 감축하는 방식이다. 향후 탄소 저감 기술 발전을 전제로 감출 실현이 가능하다는 논리로 주로 산업계에서 제시해 온 방안이다.
현재부터 동일한 속도로 감축하는 방식은 '선형 감축 경로', 초기부터 더 빠르게 감축하는 방식은 '오목형 감축 경로'로 구분된다.
시민사회는 볼록형 감축 경로가 정부가 제시한 2035년 NDC(2018년 대비 53~61% 감축)보다 후퇴한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2035년 NDC 하단인 53% 감축은 2030년 NDC(40% 감축)를 달성한 뒤 같은 속도로 감축할 경우 도달하는 선형 감축 경로에 해당하는데, 볼록형 경로를 선택할 경우 2035년 감축률이 이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체는 이를 두고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정한 '진전의 원칙(Progression Principle)'을 위반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파리협정은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수준의 감축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24년 8월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감축 경로 설정은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제한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도록 가장 의욕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전진시켜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단체는 또 볼록형 감축 경로를 선택지에 포함하려는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권경락 집행위원은 "2월 의제숙의단 워크숍에서도 볼록형 감축 경로를 설문 문항에 포함해야 한다는 산업계 의견이 일부 있었지만 투표 결과 압도적 다수로 제외하기로 했다"며 "공론화위원회가 별다른 근거 없이 의제숙의단의 숙의 결과를 뒤집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김민 대표도 "의제숙의단에서 후기 감축형 경로를 제외하기로 합의했는데 공론화위가 이를 다시 포함한다면 공론화 결과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론화위는 헌법·산업·주거·기후예측 등 각 분야 전문가 13명과 시민사회·노동계·산업계·미래세대 등 부문별 추천 인사 15명, 미래세대 옴부즈맨 2명 등으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을 꾸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의제 도출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 마지막 날에는 감축 경로 가운데 볼록형을 시민대표단 선택지에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투표가 진행됐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26명 가운데 18명이 제외 의견을 냈고, 포함 의견은 5표, 기권은 3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국회 기후특위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창훈 전 한국환경연구원(KEI) 원장은 "당시 투표는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것이었지 합의 절차는 아니었다"며 "투표로 결론을 내리겠다는 사전 합의도 없었고 사회자도 합의 절차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택지를 열어두자는 취지에서 일부 위원들이 볼록형 경로 포함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며 "최종 의제는 5차 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지난 4일 4차 회의를 열고 최종 의제와 시민대표단 구성 등을 확정하려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오는 19일 오후 3시 5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시민대표단 340명은 이미 확정돼 온라인 학습을 시작한 상태다. 5차 회의에서 의제가 확정되면 시민대표단은 자가 숙의를 거쳐 오는 28일과 29일, 다음 달 4일과 5일 KBS 생중계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론화위가 4월 안으로 공론화 절차를 마치고 결과를 제출하면 국회 기후특위는 이를 참고해 올해 상반기 중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