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멈추고 싶은 스무 살의 마음…함윤이 첫 장편 '정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공장을 멈추고 싶은 청춘의 이야기

문학동네 제공

함윤이의 첫 장편소설 '정전'은 공장을 멈추고 싶은 한 스무 살 청년의 마음에서 출발한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인물이 노동의 현실과 사랑, 우정,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올해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으로, 데뷔 4년 만에 주요 문학상을 휩쓴 작가의 첫 장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함윤이는 202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상문학상 우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낸 작가다. 감각적인 문체와 분위기 장악력으로 '새로운 스타일리스트'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이번 장편에서 노동과 사랑이라는 보다 확장된 주제를 통해 자신의 소설 세계를 한층 넓힌다.

소설은 다소 기묘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소꿉친구 은단은 주인공 '막'에게 눈을 한 번 깜빡이면 전류를 끊을 수 있다는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막은 그 고백을 뒤로한 채 스무 살의 세계로 나아간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휴학한 채 제약회사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공장은 생존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막은 수지, 영준,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라히루를 만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특히 라히루와의 관계는 단순한 동료를 넘어선 감정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라히루가 기계 오작동 사고로 손가락을 잃고 공장에서 해고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막은 친구의 부당한 처우를 목격하며 노조 활동에 참여하지만, 스스로를 '잠깐 일을 하러 나온 대학생'이라 여기는 그의 정체성은 그를 쉽게 투쟁의 중심에 서지 못하게 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머뭇거림이다. 막은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전형적인 노동운동가가 아니다. 노동자의 삶과 외부자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느끼는 모호한 정체성과 닮아 있다.

결국 막은 은단의 능력을 떠올린다. 공장을 잠시라도 정전시킬 수 있다면 라히루에게 벌어진 부당함에 대한 복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정전'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상징으로 읽힌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을 잠시 멈추게 하는 순간, 비로소 인간의 감정과 관계가 또렷이 드러난다.

'정전'은 노동소설이면서 동시에 성장소설이다. 공장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부품처럼 취급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막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 역시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친구를 향한 마음,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는 감정이다.

함윤이의 첫 장편은 그래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목격한 순간, 우리는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가. '정전'은 그 질문을 스무 살의 흔들리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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