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800원 초반 기대…석유 가격통제 '득과 실'

황진환 기자

중동 사태 여파로 국내 기름값이 치솟자 정부가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를 전격 시행한다. 이날부터 정유 4사는 ℓ(리터)당 도매가를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 이하로만 주유소에 공급해야 한다.

소비자 가격은 편차가 있겠지만 ℓ당 1800원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가격 제한이 장기화할 경우 시장 구조 왜곡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휘발유·경유 공급가 100원·200원씩 내려…해제 시기는 미정


산업통상부는 이날 0시부터 오는 26일까지 2주 동안 1차 최고가격으로 ℓ당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을 설정했다. 이는 지난 11일 평균 공급가격과 비교하면 휘발유는 109원, 경유는 218원, 등유는 408원 저렴한 수준이다.

주유소에서 판매될 가격은 휘발유와 경유 모두 ℓ당 1800원 초반까지 내려갈 것으로 기대된다. 편차가 있겠지만, 휘발유와 경유 공급가를 각각 약 100원, 200원씩 낮춘 것을 산술적으로 계산한 결과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날 전국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평균 가격은 각각 1898원, 1917원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들은 공급가를 기준으로 특정 주유소의 가격을 평가할 수 있게 됐다. 공급가가 공개적으로 발표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주유소 판매가가 비싼지 저렴한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부 양기욱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정유사의 공급가격을 공시해 소비자가 개별 주유소의 판매가격이 비싼지 아닌지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고가격은 '기준가격×국제가격 변동률+제세금' 방식으로 산정된다. 기준가격은 중동 사태 전에 형성된 정유사의 주간 공급가격이고 여기에 국제 기준인 싱가포르 석유제품 가격(MOPS) 변동률을 반영하는 구조다. 이후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제세금을 더한다.

최고가격은 국제 유가 변동을 반영해 2주마다 조정된다. 가격 안정 효과와 유가 반영 시차, 정부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다. 필요할 경우 조정 주기를 변경할 수도 있다.

해상 운송으로 추가 운송비가 발생하는 도서 지역 등 특수지역은 5% 이내 범위에서 별도의 최고가격을 적용할 수 있다. 도서 지역의 최고가격은 휘발유 1743원, 경유 1743원, 등유 1339원 등이다. 선택적 소비재인 고급 휘발유는 제한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에만 가격제를 도입하고 주유소 판매가는 제한하지 않았다. 전국에 약 1만300여개에 달하는 주유소는 지역별 가격 차가 크고 경영 방식 등에 따라 가격 구조가 상이해 일괄적으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주유소 판매가가 과도하게 높아질 경우 제재에 나선다. 최근 경기 광주시의 한 알뜰주유소는 중동 사태 발발 이후 5일 동안 경유 가격을 850원 올렸다가 정부가 단속에 나서자 하루 만에 600원을 내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양 실장은 "주유소 1만 개 이상의 가격을 매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 특이 동향을 관리할 수 있다"며 "오피넷에 주유소 가격이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흥=박종민 기자

가격 제한으로 손실을 우려한 정유사·주유소가 국내 판매량을 줄이는 상황도 단속한다. 정유사는 월간 반출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 반출량의 90% 이상 유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주유소 판매를 기피하거나 특정 업체에만 과다하게 공급하는 경우 제재 대상이다. 주유소 역시 미리 사재기를 하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가격 제한 해제 시기는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명확하게 발표되지 않았다. 정부는 국제 석유 수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제 시점을 판단할 계획이다.


장기화할 경우 꼼수 난무할 수도…한은도 부작용 우려


하지만 30년 만에 부활하는 가격 통제 정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컨대 국제 유가가 상승해 다음 가격 제한 금액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면 소비자들이 미리 기름을 사재기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특정 시기에 기름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2주 동안 국제 가격 변동이 심할 경우 정유사의 손실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는 정유사가 손실액을 자체 산정해 정산을 요청하면 검증을 거쳐 정산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심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100% 정산받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손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부 방침에 동참하는 입장이지만 가격 통제가 장기화할 경우 각종 꼼수가 발생하거나 시장 경직으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유사가 손실을 계산해 회계법인을 통해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검증하고 확정하는 구조"라며 "정유사가 자료를 제출해야 손실 규모의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규모를 계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가격 통제가 장기화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은은 전날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의 '가격상한제에 관한 의견'을 묻는 서면 질의에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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